[한ㆍ싱가포르 FTA '원산지증명' 수출기업 자율로] 책임규명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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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국 저가 제품의 우회 수출입을 막기 위한 원산지 증명 발급 방식이 한ㆍ싱가포르 자유무역협정(FTA)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수출자 자율 발급제를 제시한 정부의 협상 초안이 논란을 빚고 있다.
협상을 주도한 외교통상부와 재정경제부는 대략 두 가지로 자율 발급제도를 채택한 배경을 설명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 사이에 새로운 추세로 확산되고 있고, 기관 발급제도를 채택할 경우 국내 수출업체들도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 '규제완화' 대세에 어긋난다는 것.
그러나 이미 중국산 저가품에 내수시장의 상당 부분을 내준 중소기업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ㆍ칠레 FTA 협상과정에서의 농민 반발 못지 않은 파란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 싱가포르발(發) 절반이 우회 수입
싱가포르는 평균 관세율이 6.5%에 이르지만 대부분의 품목에 실행관세율 0%를 적용하고 있는 무관세 교역 국가다.
현재 맥주 등 알코올 음료 4개 품목에 대해서만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들 4개 품목에 대해서도 오는 2010년까지 모든 관세를 없앨 계획이다.
더욱이 한국이 싱가포르와 FTA 체결을 통해 관세 특혜를 받을 수 있는 제품은 소주 1개 품목에 국한돼 FTA가 체결되더라도 반사이익을 누릴게 거의 없다는 얘기다.
반대로 한국은 싱가포르에서 수입되는 1백대 품목 가운데 29개 품목에 관세를 물리고 있다.
FTA 체결로 관세가 사라질 경우 관세 특혜를 노리는 주변 동남아 국가들로부터의 우회 수입 증가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1년 기준으로 싱가포르로부터의 총 수입액 가운데 53%가 중계무역에 의한 제3국 제품수입으로 나타났다.
◆ 저가품 우회 수입에 무방비 우려
원산지 증명 발급과 관련, 재경부와 외교부는 수출자 자율 발급제도를 도입할 경우 수출자의 통관절차 간소화와 증명서 발급에 따른 비용절감 등의 효과를 강조한다.
한ㆍ칠레 FTA에서도 자율 발급제도를 도입한 만큼 '전례'를 무시할 수 없다는 설명도 덧붙인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수입대란'이라는 더 큰 사태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수입품의 5% 정도를 샘플 조사하는 정도의 현 세관 검사로는 우회 수입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원산지 증명에 대한 허위사실 적발시 책임 소재가 수출업자나 생산업자에 국한돼 정부 차원의 책임 소재 규명과 사후 대책 마련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문제 생기면 보완한다?
정부는 싱가포르와의 협상에서 원산지 증명 발급제도의 조정 장치로 협정 발효 후 1년간 문제점이 나타날 경우 기관 발급제로의 전환을 검토한다는 문구를 집어넣었다.
그러나 '규제완화'를 위해 수출자 자율 발급제를 채택한 마당에 기관 발급제로 돌아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는 "기관 발급제를 원산지 증명 발급제도의 기본틀로 유지하면서 우회 수입 증가 여부와 수입 민감 품목의 수입 추이를 지켜본 뒤 품목별로 단계적으로 수출자 자율 발급제도를 도입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