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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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보세요.' '용감한 국군아저씨께.'
지금의 중장년층은 초ㆍ중학교 시절 어머니날과 국군의날이 다가오면 학교 수업시간에 편지를 썼다.
부모님께 보내는 내용은 "그동안 너무 철없이 굴었습니다.앞으론 말도 잘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위문편지는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도였지만 그래도 썼다 지웠다 공을 들였다.
대학시절 서울로 유학온 지방학생들은 간간이 '아버님전상서'로 시작되는 편지를 부치고 며칠 뒤면 "아껴써라"는 답장과 함께 우편환이 도착했다.
뿐이랴.
남녀 모두 친구나 애인에게 '그리운' '보고 싶은'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쓰느라 밤을 지새운 다음 우체통에 넣었다.
편지란 묘한 것이어서 마지 못해 쓴 위문편지에도 답장이 오면 기뻐했다.
집집마다 전화가 생기면서 뜸해지던 이런 편지는 e메일과 휴대폰 문자서비스가 급증하면서 구경조차 힘들어졌다.
우편함에 쌓이는 건 광고용 다이렉트메일,정기구독잡지,청첩장,경조사답례장,의례적인 연하장 정도다.
급기야 우체통이 연 1천개씩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개인우편사업의 수익성이 워낙 낮아 이용자가 적은 곳의 우체통은 없애고 있다는 것이다.
사라지는 건 우체통에 그치지 않는다.
아쉬울 때 더없이 요긴하던 공중전화의 수도 99년 56만대에서 지난해 40만대 미만으로 줄었다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만화책을 뒤적이고 면도중 잠이 들기도 하던 동네이발소도 미장원에 밀려 자꾸 없어진다.
정성스레 수놓아 건네던 손수건도 휴대용휴지와 물티슈로 대체돼 선물목록에서 거의 지워졌다.
시공간을 뛰어넘은 실시간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모든 게 즉석에서 이뤄지는 인스턴트식 세상이 돼가는 만큼 이제 기다림을 담아 띄우는 편지나 숱한 망서림 끝에 다가섰던 공중전화,허름하지만 정겨운 동네이발소,말없이 내밀던 하얀손수건 중 그 어느 것도 옛영화를 되찾긴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공원길 공중전화 부스나 길가 빨간 우체통,깨끗하게 다림질돼 접힌 손수건에 가슴 설레는 이들이 아주 없진 않으리라.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고도 하니까.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