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이헌재'라고 한들… .. 정규재 <경제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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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1년의 경제는 '거듭된 혼란과 총체적 난국' 외엔 달리 평가할 적당한 말이 없다.
그래서 경제부총리를 교체하면서 정부 분위기를 바꿔보자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경제에 실패한 장관들까지 총선에 몰아넣는 속사정이 딱해 보이지만 그것은 유권자의 선택일 테고….
일부 장관들이 총선에 징발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은 차라리 코미디다.
참여정부의 이념과 정강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장관 소임을 맡지 않는 것이 옳고, 동의했다면 어려운 때에 힘을 보태는 것이 당연하다.
장·차관이 '승진해 올라가는' 자리가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참여정부 첫 조각에서 관료 출신들이 환영받았던 것은 인수위원회의 아마추어리즘을 경계했던 것일 뿐 다른 이유는 없다.
때로는 차악(次惡)도 환영받는 것이다.
장·차관들이 선거 차출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 책임은 싫고 자리만 좋다는 건지,그것이 아니라면 직업 공무원과 장관자리의 차이를 아직도 모른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이번 개각의 기회를 빌려 "나도 한번 장관이 되겠다"며 다시 줄을 대는 분들이나,대통령 독대와 청와대의 전화를 기다리는 명망가들도 마찬가지다.
일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일을 맡지 않는 것이 옳고,일을 맡았다면 그 책임의 무거움을 인식해야 한다.
시중에 이름이 나도는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경제부총리가 되더라도 장관들의 일하는 방식과,대통령의 장관 부리는 스타일이 변하지 않는다면 기대할 것이 없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마땅하다. 자주냐 동맹이냐는 논란을 미봉해 놓고 있는 외교부도 그렇지만 만에 하나 경제부총리가 지금껏 정책결정 과정의 핵심을 장악하지 못하고 주변만 맴도는 데 그쳤다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참여적' 정책 프로세스를 선호하고 있는 데다 국무회의가 뒷골목 소줏집처럼 난상토론과 갑론을박을 되풀이한다면 TV코미디의 봉숭아 학당과 다를 것이 없다.
노동부 장관은 친노 이념의 깃발을 흔들고,문화부 장관은 반개방 문화관을 고집하며,기획예산처는 "예산은 우리 소관"을 주장하고 과학기술부는 "이제는 우리도 부총리급"을 내세우기로 든다면 이헌재가 아니라 저헌재라 한들 나아질 것이 없다.
그것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며 장관의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문제다.
누구라도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는다면 한낱 기회주의자라는 이름을 얻게 될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이헌재 전 장관이 굳이 부총리 자리를 고사하고 있다는 얘기는 듣기에 그다지 나쁘진 않다.
또 하나,대통령은 개각으로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이헌재 전 장관은 누가 보더라도 참여정부의 이념은 물론 의사결정 프로세스와도 거리가 멀다.
그는 구조조정론자이며 효율성을 중시하고,때로 권위적이며 원칙론자에 가깝다.
대중의 정서를 거스르기를 마다않고 여론을 가벼이 보며 참여적이라기보다는 주지(主知)주의적인 그런 인물이다.
대통령이 진정으로 그를 쓰기로 든다면 그것에 합당한 배경 설명이 있어야 마땅하다.
또 노동장관 농림장관 예산장관도 그에 맞추는 것이 옳다.
내각이 단색일 수는 없지만 이념의 백화점일 수는 더욱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신호는 또 헷갈리게 마련이고,정부는 감투를 노리는 인물로만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간판만 바꾸고 내용은 그대로 둔다면 결과적으로 신뢰도 잃고 만다.
내수용은 자주파,수출용은 동맹파 식의 이중의 신호가 경제부총리 케이스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