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8년 외환 위기 당시 재벌의 구조조정 촉진을 위해 도입된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좌추적권이 끝내 연장되지 못한 채 6년 만에사라지게 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3일 "지난해 정기국회에 제출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여러 차례의 심의에도 불구하고 통과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4일밤으로 시한이 끝나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지난 96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기업들의 부당 지원 행위를 조사할 수있는 명시적 권한을 갖게 됐으나 조사 과정에서 기업들의 자발적 협조를 기대하기가어렵게 되자 98년 외환 위기 과정에서 공정거래법을 다시 개정, 3년 시한으로 계좌추적권을 부여받았다. 공정위는 이를 바탕으로 98년부터 2000년까지 4차례에 걸친 5대 그룹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벌여 그동안 기업들이 숨겨 왔던 대규모 부당 내부거래를 적발해 수 천억원대의 과징금을 물리고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효율적 수단으로 활용했으며 2000년에 다시 3년 시한으로 1차 연장했다. 공정위는 참여정부 들어 시장 개혁 수행을 명분으로 지난해 9월 정기국회에 3년간 더 연장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제출했으나 여야 4당간에 찬반이 엇갈린 데다 검찰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여야간 정쟁에 밀려 아직 국회정무위원회도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에서도 정치 자금 관련 청문회 등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데다 공정거래법이 경제.민생 분야 법안 중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만큼 시급성이 부각되지 못해 논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2월 국회가 끝나면 16대 국회가 실질적으로 임기를 마치고 정치권이 4월총선에 온통 매달릴 것이 확실시돼 17대 국회 개원 이후로나 법 개정을 기대해야 하며 이마저도 총선 결과에 따라 유동적인 실정이다. 공정위도 이에 따라 계좌추적권의 일시 상실을 기정사실화하고 가능하면 2월 국회 통과를 목표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으로 계좌추적권 없이 대기업 조사를 수행하는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계좌추적권이 없어도 조사할 수는 있지만 기업들의 자발적 협력을 기대할 수 없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놓고 "이에 따라 각종 제보나 경쟁 사업자의 신고, 노출된 거래 등으로 사전에 확실한 증거를 미리 확보한 뒤 조사를 벌이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나아가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대기업들의 거래 행위는 더 이상영업 비밀로 볼 수 없으므로 '원칙 비공개, 예외적 공개'로 짜여져 있는 금융실명법을 선진국처럼 '원칙 공개'로 바꿔 개별법을 통한 금융 거래 정보 확보가 불필요하도록 제도적 개혁을 서둘러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기자 jsk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