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시내 중심에 위치한 닛코호텔.


객실로 들어서면 인근 종합병원을 광고하는 대형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최고급 호텔에 머물면서 관광도 하고, 종합검진도 받으라는 내용이다.


3박4일 일정에 온천 마사지 식사 숙박비 검진료 등을 모두 합친 금액은 한국 돈으로 80만원 정도.


일본인 관광객 나카하시 지로(55)는 "일본의 20% 정도만 지불하면 첨단의료 장비가 갖춰진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골프 여행도 할 수 있어 매년 말레이시아를 찾고 있다"며 "일본에서는 '말레이시아 종합검진 여행'이 큰 인기를 끄는 관광상품"이라고 말했다.



태국 병원들도 휴양지와 연계한 '의료 관광업(medical tourism)'으로 연간 50만명의 외국인 환자들을 유치하고 있다.


태국 투자청은 내년에는 이들 병원이 8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투자청 관계자는 "방콕 듀짓 의료서비스 센터나 치앙마이 병원은 한국어ㆍ영어ㆍ일본어ㆍ중국어ㆍ네덜란드어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등 외국 환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응, 싱가포르는 '갑부 환자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다.


한해 15만명의 외국 환자를 불러들이고 있는 싱가포르는 '귀족형 특별진료실'을 운영, 2012년까지 1백만명의 환자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매출 목표는 30억달러로 지난해 한국이 끌어들인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절반에 육박하는 엄청난 액수다.


동남아 국가들은 지금 의료에서 교육 물류 항공 및 IT에 이르기 까지 거의 모든 산업분야의 '허브(hub)'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물류분야 허브전쟁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0년 3월 말레이반도 남단 조호르주에 건설된 탄중펠레파스(PTP)항은 아시아-유럽 기간항로인 말라카 해협에 인접한 지리적 강점을 이용, 싱가포르를 누르고 새로운 환적중심항으로 도약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PTP항은 2000년 8월 세계 최대 선사인 매르스크시랜드(Maersk Sealand)사의 동남아 기지를 싱가포르로부터 유치한데 이어, 2002년에는 세계3위 선사인 대만의 에버그린(Evergreen)사를 입주시켰다.


항만 배후지역에는 자유상업지역을 설립해 관세면제 등 각종 혜택을 주고 있으며 자동 게이트시스템을 도입해 출입절차도 대폭 간소화했다.


PTP항의 브라이언 폴 마케팅담당 이사는 "동서양을 잇는 허브 역할을 맡기 위해 말레이시아 정부는 항만 공항 등 물류 분야에 대한 투자를 다른 산업보다 우선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PTP항이 급성장하자 싱가포르항과 홍콩항은 지난해말 항만 이용료를 50% 이상 대폭 인하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싱가포르항의 경우 항만 이용자와 항만당국을 온라인으로 연결시킨 첨단 물류정보시스템 '포트넷(PORTNET)'의 기능을 강화, 모든 작업이 자동으로 이뤄지는 '무서류 항만(Paperless Port)'의 강점을 홍보하고 있다.


'정보통신 허브'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한 동남아 국가들간 경쟁은 총력전 양상을 띠고 있다.


오는 2020년까지 총 5백억 링기트(약 17조5천억원)의 재원이 투입되는 말레이시아의 '사이버자야 프로젝트'는 동남아 IT 선두주자 싱가포르마저 긴장시키고 있다.


기업들에는 사이버자야에 일단 입주만 하면 세금면제 등 다양한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인근 멀티미디어 대학에서 매년 수천명씩 배출되는 기술자들을 월평균 7백링기트(한화 27만원)만 주면 무한정 고용할 수 있어 노키아 모토로라 등 국내외 기업 2백여개사가 이미 입주를 마쳤다.


이에 싱가포르도 '커넥티드 싱가포르(Connected Singapore)'라는 국가 정보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커넥티드 홈(Connected Home)'이라는 홈네트워크 계획을 마련중이다.


전체 국민 4백만명을 하나로 네트워크화한다는 야심찬 포부다.


이 사업에는 필립스가 1억5천만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히는 등 다국적 기업들의 참여가 잇따르고 있다.


'하늘' 선점경쟁도 뜨겁다.


태국은 '동남아는 방콕을 통해'란 모토로 방콕을 동남아의 항공허브로 키우겠다는 의욕이 대단하다.


이를위해 기존의 돈무앙 공항과는 별도로 방콕에서 동쪽으로 25km 떨어진 '황금의 땅'이라는 이름의 수바나부미에 우리 돈으로 6조원을 투자, 신공항을 건설중이다.


4천5백만명의 여객과 1백50만t의 화물을 처리할수 있는 이 신공항은 내년 9월 완공 예정.


하지만 지난 연말 탁신 총리는 공사현장에서 '이동 내각회의'를 갖고 2009년까지 추가 확장할 것을 지시했다.


아디테프 나카비수트 신공항공사 부사장은 "수바나부미는 육로 해상 항공이 한꺼번에 몰리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며 "항공 허브 육성에 태국 정부의 자존심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의 IT투자 유치 담당 공기업인 MDC의 카밀 오트만 부사장은 "역내 경쟁에서 살아남는 국가는 동남아를 넘어 세계의 허브로서 우뚝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콕(태국)=육동인 논설위원ㆍ콸라룸푸르(말레이시아)=유영석 기자

dong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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