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태국 투자청(BOI)의 솜퐁 와나파 청장을 방문한 시각은 지난 12월 19일 오후 2시 45분. 솜퐁 청장은 말쑥한 차림이었지만 안경 너머 눈빛이 다소 피곤해 보였다. "다소 피곤해 보인다"며 운을 떼자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오늘 아침 미국에서 돌아왔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장관급인 솜퐁 청장은 취임 이후 태국 국내에 있었던 시간보다 해외에 머문 시간이 훨씬 많았다. "한달에 태국에 있는 시간은 열흘 정도에 불과할 겁니다." 1년 3백65일중 2백40일은 외국에서 투자유치를 위해 뛴다는 얘기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전세계 국가중 방문하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솜퐁 청장은 "태국의 CEO인 탁신 총리가 투자청이란 주식회사의 마케팅 담당임원인 자신에게 구체적 업무 목표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탁신 총리는 2003년 해외직접투자(FDI)유치 목표액을 전년대비 25% 늘어난 '2천억바트'로 정해 주었다. 구체적인 수치로 업무목표를 정했다는 것은 '달성을 못하면 해고'란 뜻이 담겨 있다. 솜퐁 청장은 "직접 발로 뛴 결과 7월달쯤 목표를 넘어섰고 11월말에는 15% 정도 초과 달성했다"고 밝혔다. 외자유치때 태국이 가장 자랑하는 것은 '안정성'. 동남아는 물론 아시아 전체적으로 태국만큼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나라가 흔치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태국 정부에서 모든 업무처리를 '원 스톱 서비스'로 처리해 주니 거대시장인 중국과 인도를 진출하기 위한 발판(Spring Board)으로 삼기에는 최적이라는게 그의 지적이다. 아세안 경제권이 하나로 묶이면 태국은 '투자천국(Investment Heaven)'이 될 것이란 자부심도 곁들였다. 일본 도요타가 미화 10억달러를 들여 R&D(연구개발)센터를 태국으로 확대 이전하기로 결정한게 대표적 성과 중 하나다. 태국과 캄보디아 관료들을 만나면 크게 차이나는게 있다. 태국 관료들은 대부분 '경제'에 대해 얘기하는데 비해 캄보디아 관료들을 만나면 한참동안 '정치' 얘기를 들어야 한다. 앙코르와트에서 만난 바크 날리보드 시엠렙 주지사도 그랬고, 수도 프놈펜에서 만난 체 반데스 총리실 국제담당국장도 그랬다. 하지만 이들도 '경제'로 얘기를 마무리하는 점은 태국 관료들과 다르지 않다. 내전이 끝난지 오래되어 이제 정치가 안정됐으니 외국인들이 많이 투자해도 좋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들은 캄보디아의 실체는 변했으나 아직 외신보도 내용이 변하지 않았다며 '정확한 보도'를 주문하기도 했다. 앙코르 와트 인근 한국식당에서 만난 바크 날리보드 주지사는 "개발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지금 투자하면 많은 이익을 누릴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SDI가 경험했던 말레이시아 공무원들의 서비스 정신은 더욱 감동적이다. 몇년전 사석에서 현지 공장내 용수공급 수도관이 너무 작아 불편하다며 문제를 제기하자 자치정부는 바로 다음날 대형 수도관 공사에 돌입하는 유연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또 한번은 말레이시아 국왕이 삼성SDI 공장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전하자 공무원들 스스로 자원봉사자로 나서 회사 곳곳을 정리정돈 해주기도 했다. 삼성SDI의 윤영섭 부장은 "말레이시아 중앙은행 담당 국장을 찾아가 외국과의 외환거래 한도 때문에 자금운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하자 즉석에서 허가명령서를 써준 적도 있다"며 "공무원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 처럼 어려운 우리나라와는 달리 기업들은 최고 정책 결정자들을 이웃사촌처럼 언제든지 만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정부가 경영의 일부를 대신 처리해 주기도 한다. 외국인투자기업들의 일손이 부족하지 않도록 채용 가능한 근로자들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둔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회사측에서 고급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신문광고까지 내가며 인재를 찾아주는 '리쿠르팅 서비스'까지 제공하는게 베트남이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지난 92년 1백여건(정부허가 기준)에 불과했던 외국인 투자는 10년만에 7백50여건으로 7배 이상 급증했다. 올해는 보 홍 푹 베트남 계획투자부(MPI) 장관이 특별보고서를 만들어 통신 철강 시멘트 하이테크 등의 분야에서 26억달러의 FDI 유치를 달성하겠다고 국민들과 약속하기도 했다. 베트남 하이퐁에서 신용케미칼을 경영하고 있는 이정효 사장은 "베트남은 외국인투자를 빨아들이는 스펀지와 같은 국가"라며 "이같은 명성은 FDI를 끌어들여 국가 경제를 일으켜 보려는 공무원들의 피나는 노력 때문에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방콕(태국)=육동인 논설위원ㆍ하노이(베트남)=유영석 기자 dong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