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증시에서 발휘하는 힘은 역시 강했다. 9일 8천1백억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순매수한 외국인의 공격적인 투자에 힘입어 종합주가지수는 19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삼성전자는 50만원 고지를 돌파했다. 올 들어 강세장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장 안팎에서 즐거운 표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최근 외국인의 움직임은 우리 경제의 희망에 베팅하는 '바이 코리아(buy korea)' 수준을 넘어 우량주를 싹쓸이할 기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우량주 독식은 자본시장의 주권 상실이라는 자존심 문제에 그치지 않고 경제활동의 과실을 고스란히 빼앗긴다는 우려마저 낳고 있다. 한 투신사 사장은 "새해 들어 주가가 계속 오르자 국내 기관들과 개인들은 주식을 팔 타이밍만 노리고 있다"며 '그들(외국인)만의 잔치'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의 우량주 싹쓸이 모건스탠리 관계자는 이날 "통상 연초에 외국인 매수세가 강하게 나타나지만 이렇게까지 대규모 매수에 나설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매수 주체는 아시아 시장에 주로 투자하는 지역펀드(regional fund)가 아니라 펀드 규모가 큰 글로벌펀드(global fund)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LG전자 국민은행 등 지수 관련 대형주가 이들의 주된 매수 타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경기와 한국경제 회복세 △미국 주식형 뮤추얼펀드 자금 유입 △미국 달러화 약세로 인한 국제 유동성의 이머징마켓 이동 등을 외국인 매수 배경으로 꼽고 있다. 새해 들어 한국에 대한 외국인의 매수 강도는 두드러지고 있다. 안선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위원은 "지난해 외국인은 한국보다 대만 시장에서 더 많은 주식을 샀지만 올 들어서는 한국에 대한 매수 강도가 대만을 소폭 웃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증시가 다른 나라 증시보다 덜 오른 데다 펀더멘털(기초체력)에 비해 주가 수준이 낮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외국인만의 잔치 증권사 관계자들은 주가가 급등세를 보였지만 '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글로벌펀드가 주로 사는 대형주만 오르고 개인들이 선호하는 중저가 종목은 철저히 소외받고 있는 탓이다. 이날 종합주가지수가 22.12포인트(2.56%) 올랐지만 내린 종목이 전체의 46%인 3백45개에 달했다. 개인들은 '풍요 속의 빈곤'을 맛본 하루였다. 이날 외국인 매수세를 틈타 국내 기관과 개인은 7백억원과 7천1백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