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16일 개봉 '말죽거리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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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 앞 풍경은 흡사 신병훈련소 같다.
선도부 학생들이 입구에 도열해 있고 복장불량 학생들은 엎드려 뻗쳐 자세로 몽둥이 찜질을 당한다.
두발불량 학생들의 머리에는 '고속도로 착공식'이 진행된다.
교실은 아비규환이다.
수업시간 중 칠판에는 쓸데없는 암기사항이 가득하고 휴식시간에는 주먹질이 난무하는 싸움터로 변모한다.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는 1970년대 말의 고등학교 풍경을 '지옥에서 보낸 한 철'로 회고한다.
이 영화는 개발과 성장의 이데올로기에 휘둘렸던 그 시절,서울 강남의 한 고교에 전학온 주인공 현수(권상우)의 성장통을 담아낸 '청춘에 대한 송가'다.
현수가 다닌 학교는 유신체제 말기 한국사회의 축소판이다.
폭력으로 교내 질서를 지배하는 '캡짱',그 주변을 맴도는 모리배,뒷전에서 그들을 욕하는 나약한 소시민,그들 세계에서 외설책자 좌판을 펼친 장사꾼….학생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학생들의 지상과제는 대학입시다.
명분은 좋지만 경직된 이데올로기로 변모하는 순간 억압으로 작동한다.
교장은 평교사를 때리고,평교사와 학부모는 학생들을 매질하고,학생은 동료 학생들을 구타한다.
모범생 현수나 캡짱 우식(이정진)도 이 소용돌이를 피할 수는 없다.
은주(한가인)를 향한 두 친구의 연정이 성취될 수 없는 까닭은 자명하다.
사랑하는 여인에 대해 너무 높게,혹은 너무 낮게 시선을 고정시킴으로써 그녀와 동일선상에 위치할 수 없다.
폭압의 세상에 거주하는 주인공들이 타인을 배려해야 하는 사랑의 세계로 건너가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작품 속 학생들의 의식과 행동을 지배하는 아이콘은 이소룡이다.
과장된 제스처로 악당을 물리치는 이소룡은 '청춘의 감옥'에 빛을 던지는 유일한 출구였다.
재수생이 된 현수가 성룡의 '취권'이 상영 중인 극장 앞에 선 마지막 장면은 상징적이다.
세월은 흘렀건만 대학입시의 족쇄는 여전하며 그 출구만 이소룡에서 성룡으로 대체됐을 뿐이다.
16일 개봉,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