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여행길의 백미는 캄보디아 제2의 도시 시엠립 외곽의 앙코르 유적이다. 앙코르 유적은 9~15세기에 걸쳐 이 지역에 터를 잡았던 크메르제국 앙코르왕조가 꽃피운 찬란한 문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앙코르왕조는 인도차이나반도 일대를 호령하는 거대 제국을 형성했지만,절정기였던 13세기 이후 내분으로 멸망하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조차 잊혀졌다. 밀림에 파묻혀 잠자던 앙코르 유적이 빛을 본 때는 4백여년이 지난 19세기 중반. 1861년 프랑스의 젊은 박물학자 앙리 무오가 이끈 탐사대의 발견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 이후 소용돌이쳤던 국제정세에 휘말렸고,영화 '킬링 필드'로 참혹상이 널리 알려진 내전까지 겪었던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은 그 자체가 곧 캄보디아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앙코르 유적을 대표하는 것의 하나는 앙코르 와트. 시엠립 시내에서 북쪽으로 5km쯤 올라가다 보면 마주하는 앙코르 유적의 관문 격이다. 너비가 2백m나 되는 해자에 둘러싸인 앙코르 와트는 왕도(王都·앙코르)의 사원(와트)이다. 높이 65m의 방추형 중앙탑과 그 탑에서 십자형으로 뻗은 행랑,네 모서리의 거대한 탑으로 연결되는 삼중의 회랑이 시선을 압도한다. 건축 양식에는 당시의 우주관이 드러나 있다고 한다. 해자는 바다,성벽은 신성한 히말라야 산맥,그 안의 사원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상징한다는 것. 참배도로의 중간쯤 북쪽에 있는 연못 앞에 서면 중앙 사당에 있는 5개의 탑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 마치 신들의 세계로 들어서는 듯한 느낌을 안겨준다. 천상의 무희인 '압살라' 등 회랑의 기둥과 벽면에 세공된 부조들도 신비감을 더한다. 앙코르 와트에서 1.7km 떨어진 곳에 있는 앙코르 톰(거대한 도성)은 왕조의 힘을 과시한다. 앙코르 톰은 12세기 말,앙코르왕조 중 가장 번성했던 때 건설되기 시작한 사방 3km의 정방형 성곽도시. 앙코르 와트보다 규모가 4배 정도 크다. 앙코르 톰에는 5개의 문이 있다. 보통 앙코르 와트 서쪽 벽과 곧장 이어진 길 위의 남문을 통해 들어간다.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이 정중앙의 바이욘 사원. 첨탑에 부조된 사면불의 미소가 신비스럽다. 불교도로 처음으로 왕위에 오른 앙코르 톰의 건설자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의 얼굴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안쪽 본체의 벽에는 신화 속의 장면들이 부조돼 있으며,외부 회랑의 벽에는 크메르 서민의 일상생활인 듯한 모습이 사실적으로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지역에서 세 번째로 지어진 사원인 바푸온,실물 크기의 코끼리 옆모습 조각이 흥미로운 코끼리테라스 등도 앙코르 톰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앙코르 톰 동쪽의 타 프롬은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 톰을 짓기 전 모후의 극락왕생을 빌면서 세운 불교사원. 할리우드 영화 '툼 레이더'의 촬영무대이기도 한 이곳에서는 사원 전체를 뒤덮어버릴 기세로 뿌리를 내린 나무를 통해 밀림 속에 파묻혔던 앙코르 유적의 어제를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