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쏟아져나온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헐값에 인수한 뒤 재매각, 막대한 차익을 챙긴 외국계 펀드들에 대해 국세청이 '세무조사'의 칼을 빼들어 주목된다. 외국계 펀드들은 1998년 국내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된 이후 은행 증권 등 금융회사와 부동산 부실채권 등에 투자해 남긴 차익이 최소한 5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됨에도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아 왔다. 금융계에서는 특히 H&Q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 결과가 향후 칼라일(한미은행), 뉴브리지(제일은행 등), 골드만삭스(국민은행) 등 국내 금융회사에 투자한 뒤 매각을 추진중인 펀드들에 대한 과세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 조세회피지역 이용한 펀드 수두룩 국세청이 외국계 펀드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은 지난해 8∼9월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소득을 탈루한 법인에 대한 세무조사 이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65개 탈세혐의 기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라부안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 펀드가 가장 많다는 사실을 포착, 전반적인 점검에 나섰다는 것. 당시 국내에는 외국계 펀드들이 엄청난 수익을 내고도 세금을 거의 내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 팽배해 있던 때이기도 했다. 국세청은 이에 따라 라부안 등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외국계 펀드 11개사에 대한 기획조사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무적인 검토결과 2∼3개 법인정도만 조사실익이 있다고 판단해 조사에 들어갔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올해 H&Q를 비롯 모건스탠리와 론스타 등도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조세협약 해석 놓고 논란 지난해 조사를 받았던 영국계 HSBC는 약 70억원의 양도세를 추징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스닥 등록업체인 PKL이라는 회사에 투자해 수백억원의 차익을 남겼지만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이 발단이 됐다. 국세청은 HSBC가 역외펀드를 설립한 지역이 조세협약을 맺은 말레이시아에 속하지만 수익을 얻은 실제 펀드 투자자들은 조세협약 적용대상이 아닌 국가에 속한다고 보고 '수익적 소유자'의 개념을 적용,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HSBC펀드는 이에 반발, 수익적 소유자는 이자와 배당소득에 국한된 개념이며 주식양도차익에는 적용할 수 없다며 과세적부심을 신청했다. 국세청은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이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H&Q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국계 회사이며 라부안을 통해 들어온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굿모닝증권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근거는 두가지 정도로 제시된 것으로 전해진다. HSBC와 같은 수익적 소유자의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첫째고 둘째는 '고정 사업장' 개념을 적용해 과세근거를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H&Q가 미국계이긴 하지만 국내에 사업장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세법을 적용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다. 추징대상 금액은 7백억원 정도로 전해졌다. ◆ 세법 허점 보완이 시급 이찬근 인천대 교수(경제학)는 "국세청이 세금을 내지 않은 업체를 조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단발성 조사보다는 과연 국내 세법에 외국계 펀드들이 빠져 나갈 수 있는 구멍은 없는지 제도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세청이 탈세에 대해서는 국내외 차별 없이 철저히 조사해야 하지만 과세할 수 있는 다양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