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가 우리 기업인들에게 준 교훈은 외형 위주 확대 경영의 허상을 일깨워 준 점일 것이다. 여성패션 전문기업 대현의 신현균 회장(56)은 과다한 투자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회사를 사재출연과 구조조정을 통해 내실있는 흑자기업으로 재탄생시킨 기업인이다. 2001년말 워크아웃에서 벗어난 대현은 지난해 2백37억원의 흑자를 낸 데 이어 내수 침체가 극심한 올해에도 1백억원 이상의 순이익을 올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빚을 갚기 위해 서울 논현동 사옥을 처분하고 현재의 빌딩으로 전세들어 왔지요. 덕분에 지난 99년 6백86%이던 부채비율이 지난해말 1백68%로 떨어졌습니다.내년 목표는 금융기관 빚을 모두 갚아 무차입 경영을 하는 것이지요." 서울 수서역 인근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신 회장은 과거의 무리한 확장 경영이 생각나는듯 내실 경영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한다. 여성복 시장에서 빅3중 하나였던 대현은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페페''마르조''씨씨클럽''주크''모조' 등의 브랜드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스포츠웨어 전문회사 '지앤코'를 설립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직원 수도 8백여명에 이르고 매출액은 3천억원을 넘겼다. 그러나 94년10월 대전에 문을 연 패션전문백화점 '앤비플라자'가 매년 70억원 가량의 손실을 내고,과도한 브랜드 확장과 관리부실 등이 겹쳐 구조적 부실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방만한 경영으로 96년쯤엔 회사의 기초체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외풍이 불면 흔들릴 것이란 생각을 했죠.그런데 97년 말부터 태풍(외환위기)이 불기 시작한 겁니다." 99년10월. 금융기관의 상환 압력이 커지면서 유동성 부족을 겪던 대현은 대우사태로 회사채 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되자 결정타를 맞게 된다. 3백억∼4백억원대에 달하는 회사채의 만기 연장요청에 금융기관들로부터 '불가' 통보가 잇따랐다. 신 회장은 23년간 애지중지 키워 온 회사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문제가 생겨 길거리에 나앉게 될 종업원들과 줄도산을 면치 못할 1백50여개 영세 협력업체들을 생각하면 바위를 얹어놓은 듯 가슴이 답답했습니다.회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좌절감도 느끼지 못했지요." 그는 회사를 살릴 방안을 찾느라 뜬눈으로 밤새우기를 거듭했다. 고민 끝에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을 찾아간 그는 은행장과 대면했다. "이 고비만 넘기면 회사를 다시 살려낼 자신이 있으니 부도만 막아 주십시오." 신 회장은 회사 자금경색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간청과 함께 비장의 카드를 제시했다. 최규술 기자 kyus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