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을 많이 내는 회사가 상호를 그대로 둔 채 적자기업에 흡수 합병되는 형식을 취하는 '역(逆)합병' 시장에 급브레이크가 걸릴 전망이다. 적자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가 역합병 기업에 대해 허용해온 법인세 감면 혜택을 내년부터 전면 폐지키로 했기 때문이다. 우량 기업들로서는 세금감면 효과가 사라진 마당에 누적적자 투성이의 기업을 굳이 사들일 유인(誘因)이 약해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부실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는 기업인수합병(M&A) 시장이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고정자산과 종업원을 승계하는 자산부채인수(P&A) 방식으로 기업구조조정 시장이 급속히 재편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 부실기업 가치하락 불가피 현행 법인세법 시행령에는 기업 합병시 5년간 누적결손금에 해당하는 법인소득을 과세대상에서 공제하도록 돼 있다. 다만 동일계열 등의 특수관계에 있는 회사들이 적자기업을 인수 합병해 세금을 회피하려는 것을 막기 위해 예외조항을 두고 있을 뿐이다. 재경부는 그러나 올해말 시행령 개정에서 모든 역합병에 이월결손금 관련 소득공제 혜택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성수용 재경부 법인세제과장은 "적자기업을 이용해 법인세를 탈루하려는 의도를 차단하기 위해 특수관계법인뿐만 아니라 모든 법인 간에 발생하는 역합병에 세금감면 혜택을 주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서울은행을 합병한 하나은행은 역합병으로 2005년까지 3천7백억원의 세금을 절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조흥은행을 인수한 신한은행은 향후 합병을 하더라도 세금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기업구조조정 시장에 매물로 나온 다른 부실기업들을 인수하려는 회사들도 세금을 절감할 수 없기 때문에 매물기업들의 가치는 그만큼 떨어질 전망이다. ◆ 역합병 세혜택 폐지 논란 일 듯 부실기업을 인수키로 본계약을 체결했으나 올해 말까지 물리적으로 역합병을 할 수 없는 회사들은 적지 않은 손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시행령 개정안이 내년 1월부터 적용되기 때문이다. 계약 당시에는 기업합병에 따른 세금절감 효과까지 감안해 인수가격을 정한 기업들이 올해말까지 합병을 마무리짓지 못하면 세금감면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코스닥 시장에서 H사와 W사의 기업인수 협상이 역합병에 따른 세금혜택을 전제로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졌으나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역합병에 주어지는 세금혜택을 폐지하는 정부 방안에 반대하는 주장도 정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한 재경부 관계자는 "누적적자가 큰 결손기업에 현금이나 현물을 출자해 이익을 낼 경우 이월결손금 공제혜택을 주고 있다"며 "역합병이란 누적적자 기업에 우량회사를 현물로 출자하고 회사 이름을 바꾸는 셈인데 역합병에만 세금혜택을 주지 않기로 한 것은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 외국인 입김 더 커질듯 외국 자본이 이미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 시장에 외국인들의 입김이 더 한층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역합병에 따른 세금혜택은 국내에 우량기업을 갖고 있는 국내자본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반면 외국자본은 적자기업을 인수하더라도 여기에 합병시킬 만한 우량기업을 별도로 갖고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번 세금혜택 폐지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재경부는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해 다국적기업의 국내 법인이 모기업에서 경영관리 재무 전산 등의 용역을 제공받을 경우 비용으로 인정, 세금 부담을 덜어주기로 했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