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관광 차 일본을 찾는 한국인 여행객들이 일본 땅에서 심심찮게 겪는 불편 중 하나는 '신용카드'다. 당연히 신용카드를 받을 것으로 생각하고 들어간 상점이나 식당에서 카드가 통하지 않아 당황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지적대로 일본은 신용카드에 관한 한 의외로 불편한 점이 많은 나라다. 대형 상업시설이야 그런 곳이 별로 없지만 소규모 자영점은 신용카드와 담을 쌓고 장사하는 곳이 수두룩하다. 가맹점이라 하더라도 카드 표시를 붙이지 않거나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게 붙인 곳이 허다하다.출입문과 계산대 주변에 신용카드 표시가 빼곡히 붙어 있는 한국의 상점,식당들과는 영 다른 모습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신용카드로 물건 값을 치르거나 식사비를 대신하는 손님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일본의 카드 대중화가 뒤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상거래 활동 전반에 어음·외상 문화가 깊숙이 뿌리박힌 상황에서 카드라는 결제 수단을 고집하지 않아도 별 불편이 없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눈여겨 봐야 할 것은 '(특별한 이유 없이)남에게 신세지지 않는다'는 일본 사회 특유의 생활 문화다. 남에게 신세지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분에 넘치는 대접, 소비를 멀리 한다는 정신으로 이어진다. 어릴 때부터 이런 가르침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란 사람이라면 공짜·요행을 바라거나 호주머니 사정에 넘치는 소비를 멀리 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최대의 신용카드사가 자금난으로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렸다는 뉴스는 너무도 다른 한·일간 카드 문화 차이를 리얼하게 비쳐준다. 선심 쓰듯 무더기로 발급된 카드와 뒷감당을 생각지 않고 휘두른 사인, 그리고 감독 소홀이 빚어낸 삼위일체 부실은 수박 반쪽도 두세 번 망설이다 바구니에 담는 일본 국민들이 납득키 어려운 시한폭탄인 것이다. "한국 경제의 호황은 주택 거품과 카드 소비가 만들어낸 일시적 허상이다." 한국이 대통령선거 열기에 뒤덮였던 지난해 말 일본의 한 이코노미스트가 던진 비판은 거품과 무분별한 꿀맛이야말로 한국 경제의 독약이라는 교훈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도쿄=양승득 특파원 yangs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