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거래가 거의 없는 미국에서 신용카드는 생활필수품이다. 외국 특파원이라는 '신분이 검증된 기자'였지만 지난 1년 동안 미국에서 생필품을 구경하지 못했다. 신분에 자신이 있었고 은행에도 적지않은 돈을 예금해 놨기에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하지만 미국 카드회사들은 이같은 기자의 확신을 철저하게 깔아뭉갰다. 불가피하게 5천달러를 인질처럼 은행에 맡겨놓고 그 범위안에서만 신용으로 쓸수 있는 담보부 카드를 신청했다. 예금 범위안에서 미리 쓰는 것이기에 엄격한 의미의 신용카드라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1년간 성실하게 카드 대금을 갚은 후에야 비로소 정규 신용카드 발급 절차에 들어갈 수 있었다. 1년간 담보부 카드 사용 규모 및 상환 실적을 정밀 체크한 후에야 정규 카드를 발급해주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청서를 내놓고 인가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중이다. 동료 특파원은 5년전 연수생으로 미국에 왔을 때 한국계 은행의 도움으로 정규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 담보조로 넣을 예금이 없어 고민하다가 한국계 은행에 부탁했더니 서울 본사와 협의를 거쳐 당일에 정규 카드를 발급해 줬다고 한다. 불과 1~2년전까지만 해도 한국 신용카드사들은 회원수를 늘리느라 광분했다. 정부는 거래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분을 내걸고 신용카드 사용자들을 추첨,복금을 주면서 카드 사용을 부추겼다. 그 후유증이 오늘날 LG카드의 부실이고 경제의 발목을 잡는 소비위축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나흘 있으면 기자도 어엿하게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1년간 신용사회의 매서운 맛을 경험한 후에야 비로소 생필품을 손에 쥐게 되는 셈이다. 그런 절차가 귀찮아 직불카드만을 3~4년씩 사용하다 귀국한 주재원들에 비하면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욕=고광철 특파원 gw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