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시인 한 분께서 은혜와 관련하여 사람에는 네 부류가 있다고 했는데.첫째 은혜를 알고 은혜로 보답하는 '분', 둘째 은혜를 알고 갚아야지 하면서 갚지 못하고 사는 '사람', 셋째 은혜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사는 '놈', 넷째 은혜를 모르고 원수로 갚는 '새끼'가 있다는 것이다. 후배들 보고 배은망덕(背恩忘德)하여 '놈'이나 '새끼'가 되지 말고 '분'은 못 되어도 '사람'은 되라고 했다. 지난해 두 여중생이 훈련하던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은 사건으로 촛불시위를 하며 미국의 성조기를 불태우는 장면과 불타는 성조기에 눈물을 흘리는 미군 장군의 모습이 미국에 방송된 후 많은 미국 시민들은 '배은망덕'을 느꼈다고 했다. 한·미간 감정의 갈등은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뉴욕을 방문해 "만약 53년 전 미국이 우리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로 많이 누그러뜨렸다. 이라크 파병에 대해 여러 시민단체들은 '명분 없는 전쟁'이기 때문에 반대하고, 파병하는 경우도 젊은이들의 목숨이 귀하기 때문에 전투병은 반대하고 나섰다. 이런 국내상황과 한·미동맹관계의 중간에서 '3천명의 재건지원부대'라는 결정이 잠정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 미국 측의 희망인 '5천명 이상의 치안유지부대'와의 견해 차이는 '파병결정'에 감사하며 파병의 규모와 성격에 대해 '각국이 해야 할 결정'이라는 '외교적 수사'로 넘어갔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미국과의 관계도 명암이 교차했다. 통상요구와 조난 선박에 대한 보호요청이 빌미가 돼 일어난 신미양요(1871년)에서 조선의 쇄국정책이 오히려 강화되자 전쟁에서 이긴 미국은 조선과의 통상을 포기했다. 미국이 필리핀을,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태프트-가쓰라밀약'(1905년)이 체결되고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이 일본에 승리해 우리는 독립했지만 주한 미군이 철수하자 6·25전쟁이 일어났고 미군의 참전으로 우리의 오늘이 존재하게 됐다. 9·11테러로 미국의 상징인 월드트레이드센터가 폭삭 내려앉고 2천8백명의 희생자가 난 그들에게 테러방지를 위한 전쟁을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말은 그들에게는 불 난 집에 부채질일 것이다. 6·25전쟁에서 3만6천여명의 미군이 전사하고 지금 3만7천명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에서 인명피해를 이유로 그 10분의 1도 안되는 비전투병을 파병하겠다는데 어찌 감정이 좋을 수가 있겠는가. 소련의 위성국이었던 폴란드가 많은 전투병을 재빨리 파병한 이유, 오스트레일리아가 미군이 가는 곳에는 어디나 신속히 파병하는 이유, 미국과 전쟁을 한 일본이 전투병을 파병하려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조선군은 비상한 용기를 갖고 창과 칼로 미국군의 대포와 총을 상대했는데, 그나마도 없는 맨주먹의 병사들은 성벽 위에 올라 돌을 던지고 흙을 쥐어 눈에 뿌렸다"는 신미양요의 결사쇄국(決死鎖國)은 식민지라는 통한을 남겼다. 일본은 시보다, 하코다데, 나가사키를 개항하고 명치유신(明治維新)을 치르고 바깥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이라크전쟁을 두고 외국서도 '명분'이 없다는 사람들이 있고, 이탈리아 파견군이 테러로 17명이 전사하자 파병을 망설이는 나라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파병 규모의 10배가 넘는 6·25전쟁의 전사자와 지금의 주한미군을 갖고 있는 우리의 입장은 달라야 하는 게 아닌가. 세상일이란 감정이 부딪치면 주고도 뺨 맞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군의 6·25전쟁 참전을 부정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사람에겐 할 말 없지만.이라크 파병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국익은 무엇인가. 세계의 4대강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에 둘러싸인 한반도를 우리 스스로 방어하고 운명을 결정지을 힘이 있는가. 우리는 '사람'의 도리에 합당하게 행동하고 있는가. 보은(報恩)과 망은(忘恩) 사이를 줄타기하는 '경계인'은 아닌가. mskang36@unitel.co.kr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