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금융가에서 가장 기피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관치금융'이다. 과거 정부가 마음대로 은행장을 갈아치우고 부당하게 특정 기업에 대출압력을 넣는 것 등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말이다. 이런 점에서 금융가의 관치금융 기피는 바람직한 것 같다. 물론 관치금융의 대안은 시장이다. 경제현안에 대한 질문을 하면 정부당국자들이 가장 흔히 하는 말도 "시장이 알아서 해결할 문제지 정부가 나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관치를 피하기 위해'라는 말을 꽤 오랫동안 듣다 보면 마치 '무대책'이란 비판을 피하기 위한 면피용으로 사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최근 카드회사 문제와 신용불량자 문제가 대표적 케이스다. 카드사와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한 금융감독당국의 접근은 대단히 신중하다. 금융감독 당국자는 "카드 및 신용불량 문제는 분명 '정책의 실패'인 측면이 있다. 그런데 이를 내놓고 얘기하고 대책을 세우면 관치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정부가 드러내지 않고 문제를 조용히 처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일까. 하지만 정부가 작은 움직임이라도 보일라치면 시장에는 금방 소문이 돌고 일각에선 "또 다시 관치"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런 비판에 부딪쳤을 때의 정부 태도다. 정부가 "카드 회사가 망가지고 신용불량자가 늘어나면 경제의 근간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 청와대를 포함해 정부 내에는 시장의 역할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과 시장의 실패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뉘어져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청와대에 이런 저런 문제를 얘기해도 관치라는 말을 듣지 않게 처리하라는 지침 정도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관치금융에 대한 반성은 관 주도의 성장전략이 종착역에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측면도 있다. 외환위기 이후 관치를 넘어 미국식에 대한 각종 실험을 해온 한국 사회가 이제 새로운 해법 찾기에 나서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김용준 경제부 정책팀 기자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