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제35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의 3천명 추가파병 결정에 대해 수용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감사의 뜻만 전한 것은 한국 내 파병 반대 여론과 이라크 정세 등을 감안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그러나 용산기지 이전과 관련해 그간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에서 사실상 합의했던 연합사와 유엔사의 기지 내 잔류 계획을 번복, 한강 이남으로 옮기겠다는 최근 입장을 다시 고수해 한국측의 파병안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양국이 향후 추가 실무협상을 통해 이번 SCM에서 드러난 이견들을 조기에 해소하지 않는다면 당초 오는 2006년까지 옮기기로 한 기존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가 용산기지 이전은 장기과제로 남게 될 가능성도 높다. 럼즈펠드 장관은 이번 협상에서 최대 난제로 예상된 재건 위주의 한국군 3천명의 이라크 추가 파병안에 대해 수용할지 여부를 밝히지 않은 채 파병문제는 주권국가가 알아서 결정할 성격이라며 '고맙다'는 뜻만 전했다. 그는 이라크에 추가병력을 파견하고 2003∼2007년 2억6천만달러 규모의 재건비용을 제공키로 한 노무현 대통령의 결정에 사의를 표하고 순조롭고 시의적절한 파병 보장을 위해 정보공유 및 군수계획과 관련해 한국과 긴밀히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미국은 한국 내 반미감정과 이라크 안보 현실, 국제사회의 파병 거부 움직임 등을 감안해 파병 부대의 규모와 성격, 시기 등에 반대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를 수용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전통적 '혈맹관계'를 내세워 대규모 전투병 파병을 강력 요청했음에도 제대로 충족되지 않은데 대해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속내는 다르다는 얘기이다. 럼즈펠드 장관이 이번 SCM에서 용산기지에 남게 될 유엔사 및 한ㆍ미연합사의 주둔지 면적 등이 수용되지 않자 이들 부대를 한강 이남으로 이전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힌 것도 한국측의 파병안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한국은 17일 협상에서 국민정서를 감안해 잔류부대 면적을 20만평 이상 할애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천명했으며 미국은 1천명의 유엔사 및 연합사 요원들을 주둔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28만평 이상의 부지와 시설이 보장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용산기지 이전의 법적체계로 '불평등 합의' 지적을 받아온 합의각서(MOA)와 양해각서(MOU)를 대체하는 포괄협정이 이번 SCM에서 공식 문서화돼 연말 정기국회에 상정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그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기지 이전 대상 지역 주민 설득과 부지 매입에 시간이 필요하고 3년 내 군사시설, 주거 및 복지 시설 건립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포괄협정안이 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현철 기자 hc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