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내놓았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유지하되 내부 자율규제 장치가 잘 정비된 기업들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는 내용이 새로 포함됐다. 출자총액제한제도자체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만족스럽지 않겠지만 내부자율규제 장치의 중요성을 반영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하다. 사실 외국에서는 기업조직의 복잡성을 들어 내부자율규제 장치를 잘 운영하고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정책적 인센티브가 주어질 뿐 아니라 경영진을 면책해 주는 판례까지 있다. 1994년에 미국에서 의료서비스 회사 캐어마크(Caremark)의 부장급 이하 직원 몇 사람이 회사 정책을 무시하고 환자 유치를 위해 병원과 의사들에게 불법적인 커미션을 주다 적발된 일이 있는데 관련법상의 양벌규정 때문에 이들은 물론 회사도 무려 3천억원의 벌금을 물었다. 그러자 주주들이 직원들을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책임을 들어 이사들을 상대로 같은 액수를 물어내라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2년간 지속된 이 소송에서 원고 주주들은 사실상 패소하였다. 이유는 회사가 평소에 내부통제 시스템을 갖추어 모범적으로 정비,운영해 왔다는 사실을 성공적으로 입증하였기 때문이다. 96년에 미국 델라웨어 주 법원이 내린 이 판결의 담당 판사는 윌리엄 알렌 판사였는데 지금은 뉴욕대학 법대 교수로 있다. 미국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진 법관들 중 한 사람이다. 이 판결은 미국연방양형지침을 민사책임의 영역에 도입한 것으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즉 회사가 임직원의 행위로 처벌될 때 잘 정비된 내부통제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었다면 벌금의 95%까지 감면해 준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이 판결 직후 개최된 한 세미나의 자료가 무려 1천 페이지가 넘었던 것을 보면 이 판결이 미국기업들에 미친 파장의 크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법원의 판결은 사건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것이지만 우리도 미국의 이런 사례를 참고로 해 볼 만하다. 즉 정부에서 소유구조뿐 아니라 내부통제 장치를 포함한 기업지배구조 전반과 관련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구체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주장하는 공정위의 기본 생각은 우리 나라에서 적대적 M&A를 대표로 하는 외부통제 시스템이 기업의 소유구조 때문에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나 소유구조의 인위적인 변경에 따르는 비용을 생각해 보면 다른 정책의 연구도 마찬가지로 절실하다 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소유-지배 괴리도가 높더라도 내부통제장치를 포함한 다른 지표가 좋은 기업은 우대 받아야 할 것이다. 내부통제 자율규제는 정책적인 함의도 가진다. 내부통제 시스템의 정비는 부실공시나 회계분식 같은 사고발생의 위험을 아예 줄여준다. 법적 책임의 감면을 통해 경영진을 지원하는 효과를 가질 뿐 아니라 내부통제 장치를 공시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평가하는 기업가치를 높일 수도 있다.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기업의 가치를 높인다는 것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경제학자들의 치밀한 연구를 통해 실증적으로 검증된 명제다. 엔론 사건 이후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미국의 기업회계와 지배구조개혁 움직임에서 내부통제 시스템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배경에 있는 엄청난 인센티브는 외부 관찰자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정책이란 언제나 우선순위의 선택문제다. 효과와 비용을 같이 감안해야 한다. 기업들이 규제가 지나치다 해서 애로사항을 토로한다면 인센티브가 포함된 자율규제에 맡겨 보는 것도 현재 우리 경제상황에서 한 대안이 될 것이다. 인센티브가 없는 개혁 드라이브는 잘못하면 경제전체의 피로도만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데 유의해야 할 것이다. hjk@law.stanford.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