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9년 10월26일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해사건의 궁정동 안가 현장을 생생하게 촬영한 컬러 필름이 30일 KBS 1TV 9시뉴스에 처음 공개됐다. 사건 이튿날 보안사 수사팀이 촬영한 이 필름엔 문갑이 나뒹굴고 문짝이 부서진 만찬장에 차지철 경호실장이 숨져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양팔을 벌린 채 누워있는 차 실장의 흰색 와이셔츠는 오른쪽 옆구리 부분이 총상으로 인해 붉게 물든 상태였다. 박 전 대통령의 시신은 이미 옮겨진 상태였지만, 앉았던 자리에는 흥건한 핏자국이 보였고, 방석에도 검은 피가 엉겨붙어 있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가수 심수봉씨가 연주했던 기타는 낮은 장에 기대 세워져 있었고, 마루에는 피가 묻은 스타킹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어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짐작케 했다. 양주병과 술상 위의 음식들도 사건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현장에 놓여 있었다. 만찬장 옆 대기실엔 중정 직원들의 총격을 받고 사망한 검은 양복 차림의 경호처장과 부처장이 각각 엎드린 자세와 누운 자세로 발견됐다. 당시 일반가정에선 보기 힘들었던 오븐까지 갖춰진 안가 부엌에서도 정장 차림의 시신이 보였다. 주방 유리창엔 총탄이 뚫고 들어간 구멍이 2개 나 있었으나 유리창은 깨지지 않은 채였고, 주방 타일에도 총탄 자국이 남아있었으며, 주방 바깥에는 9387호 승용차가 서 있었는데 KBS는 "승용차에 타고 있던 저격조가 창문을 통해 저격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공개된 궁정동 현장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대한 현장검증 때 찍은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고일환 기자 k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