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현재 폐연료봉 8천개 중 2천500개 정도를재처리했다는 정부 고위당국자의 발언은 북한과 미국 양측 모두 위험한 `핵게임'을벌이고 있음을 다시 확인해주고 있어 국내외에 상당한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최근 연일 북한의 핵 관련 강성발언이 쏟아지고 이에대해 미국이 "새로운 사실 이 아니다"고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사이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이 30% 이상진행된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이 당국자의 말에 비춰보면 그동안 북한의 잇단 핵 관련 강성발언들은 실제 상황보다 훨씬 과장된 것이었던 반면, 미국은 북한에 대한 무시 정책으로 실제 상황을 의도적으로 축소시켜온 셈이다. 북한이 폐연료봉의 재처리 진행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지난 4월18일 외무성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과 가진 회견에서였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8천여개 폐연료봉들에 대한 재처리 작업까지 마지막 단계에서 성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미 양국은 이같은 북한의 주장을 공식으로 부인하고 나섰다. 그로부터 80일 남짓 흐른 지난 7월 8일 북한은 뉴욕 실무접촉을 통해 "영변 핵시설내 8천개 폐연료봉 재처리를 6월 30일 완료했다"고 미국에 통보했다. 이 당시 한미 양국은 북한이 폐연료봉 재처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거나 완료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과학적 자료나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향후 대미 회담에서 협상력을 높이려는 `낡은 수법'이라는 입장이었다. 북한의 '과장'과 미국의 '무시'. 이같은 양상은 지난 8월 베이징 6자회담 이후 북한이 공공연히 '6자회담 무용론'과 함께 '핵억제력 강화' 발언을 내놓은 데 이어,마침내 ▲추출한 플루토늄을 핵억제력 강화 방향으로 용도 변경(10월 2일 외무성대변인 담화) ▲때가 되면 핵억제력의 물리적 공개조치 취할 것(10월 16일 외무성대변인의 조선중앙통신 회견) ▲핵억제력 강화는 때가 되면 실물로 증명하게 될 것(10월18일 외무성대변인 담화) 등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실제보다 과장된 강성발언을 내놓아 미국측의 반응을 떠본뒤 미국측이 이를 무시하면 '어디 두고보라'는 식으로 재처리 작업을 다그치는 전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분석되고 있다. 북한이 지난 16일 외무성대변인 담화에서 '미국의 시간끌기'를 거론,"미국이 얻고자 하는 그 시간에 우리도 우리대로 이미 공개된 필요한 수단을 더욱 완비하고강화할 수 있는 충분한 여유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으로는 이같은 여러 정황을 알면서도 미국이 북한이 아주 초보적 단계의 재처리 작업을 하고 있는 것처럼 인정해온 것을 놓고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이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 3월초까지만 해도 폐연료봉 재처리를 '레드-라인'(금지선)으로 삼았던 미국이 이제는 '재처리 완료'로 기준점을 옮긴 것인지, 실제로 재처리가 완료된 이후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 그 속셈이 여러가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 유 기자 ly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