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파병 할수밖에 없다면 .. 全哲煥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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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哲煥 < 충남대학교 명예교수.前 한국은행 총재 >
정부는 18일 오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 후 전날까지 "조급히 서두르지 않겠다"는 전투병의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17일 유엔의 "이라크 결의안"이 통과돼 명분이 생긴데다가 20일부터 개최되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중 한·미 정상 대좌에 응답하고자 한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번 "이라크 파병 신중결정"이라는 의견을 피력했으나 취임 후 대미 외교자세로 보아 명분쌓기 쯤으로 인식됐다.
한국전쟁 후 우리의 대미 정서와 미국중심의 단극체제하의 한국입장으로 보아 어쩌면 현실론일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은 또 한번 국민의 믿음을 저버리게 됐다.
그러나 여론은 "참여정부의 자기부정이고 굴종외교"라는 전투병 파견 반대론과 "동맹국의 의무 또는 국익중시"라는 찬성론으로 대립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로운 동맹참전 전략을 구사해 국민합의에 이르기 위해선 이라크 전쟁성격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지금의 이라크 전선은 기원전 4백년 아테네의 작가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 후 유일한 근본적 전쟁문제를 다룬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에 비추어보면 다음과 같은 세가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클라우제비츠의 '전략의 역동성' 요소는 기습,동맹,긴장과 휴식,승리의 한계 정점,전략의 진화 등이다.
이 가운데 동맹론이 지금 우리에게 중요하게 조감해야 할 관점이다.
사실 이라크는 우리나라의 안전과 가치에 위해를 가하는 적대국이 아니다.
다만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의 동맹 약속 이행의 대상국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전투병이 파병되면 그 이후부터 이라크는 물론 이슬람권이 적대관계로 돌아설 우려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적은 없고 동맹국의 적만 존재하는 대리전 담당국이라는 국제적 비하 부담을 안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전쟁 상대 국민에 대한 반감을 최소로 줄이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다.
둘째,지금의 이라크 전선은 다양한 전쟁모델 중 게릴라전의 성격을 지닌다.
도덕적 승복없는 패전은 '열전 후의 자연적 부산물인 게릴라전'으로 전환하게 마련이다.
이슬람 문명권 중심국중 하나인 이라크는 초강대국 미국과 맞설 위치에 있지 않았으나 기독교 문화권인 서방, 특히 미국과의 문명충돌을 피하지 못했을 뿐이다.
지금은 오히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 보유와 테러 추동 의심만으로 침공한 미국이 부도덕적이라고 비난되고 있다.
또 게릴라는 적군의 외곽부터 잠식하는 '타다 남은 불꽃'이며 정규군에게 가장 강력한 위협이다.
그런데도 전선없는 전쟁속에 뛰어드는 우리로서는 전투병 파견으로 적대성이 없는 이라크를 자극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셋째,동맹국의 대리전인데도 연 2천억∼4천억원의 전비를 우리가 부담하고 지원금도 2억달러나 내는 것이 대리전 참전 명분으로는 매우 약하다.
다만 추후 석유 자원의 안정적 확보,전후 복구 참가,미국의 대북 정책전환 급부 이익으로 상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자존심과 도덕성과 바꿀만할까.
사실 이와 같은 성격의 이라크 전투병 파견은 공격과 방어를 상호지원하는 식의 고대 로마시대의 동맹전 유산을 물려받은 유럽과 미국의 전략이다.
로마를 둘러싼 소규모 국가들은 로마동맹조약을 거부하지 못하고 로마가 요구하는 전쟁에 참전하면서 로마의 약탈과 지배를 지원했었다.
로마는 로마가 형성한 동맹을 통해 성장했고,그 이웃들은 로마의 적극적인 억압을 피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공표한 전투병 파병을 취소할 수는 없다고 해도 역사적 교훈을 오늘에 거울 삼아 이슬람 문명권과는 적대적 관계를 최소로 하면서 미국과의 동맹을 저해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그 길은 비전투병 파병이 될 것이다.
결국 파견부대의 비전투화,이라크 민주주의화를 지원하기 위한 정훈화,전후 복구 및 정국 안정과 민생 지원이 동맹권 참전의 최대 지혜이다.
chchon@bo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