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헌혈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대한적십자사가 '세계 헌혈의 해'를 계기로 매혈추방 범 국민캠페인을 전개하면서부터였다. 그 이전에도 간간이 헌혈운동은 있었으나 자진헌혈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 대부분의 수혈용 혈액은 돈을 지급하는 매혈로 충당할 수밖에 없었다. 6ㆍ25 동란 중에는 전상자 치료에 필요한 혈액을 미국에서 공수했다. 최초의 헌혈운동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각국으로 확산됐다. 국제적십자사연맹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운동은 '사랑' '박애정신'이 강조되면서 점차 관심을 끌었고,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찍이 혈액은행을 운영하면서 혈액 자급도를 높였다. 국내의 국립중앙혈액원과 같은 성격이다. 그동안 헌혈로 충당해 오던 혈액이 부족해 병원마다 비상이 걸렸다는 소식이다. 두 달 가까이 혈액적정 재고량이 뚝 떨어져 있는데, 백혈병 환자와 재생불량성 빈혈환자들이 수술시기를 놓치지 않을까 해서 의료현장의 긴장감이 팽배해지고 있다고 한다. 응급환자가 몰리면 혈액부족으로 자칫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혈액부족사태가 비단 이번뿐만은 아니다. 과거에도 여러번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요즘의 상황은 그리 간단히 보아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 헌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회 구석구석에 깊이 스며있기 때문이다. AIDS나 BㆍC형 간염 등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혈액이 유통되고, 당국의 혈액관리에 대한 불신 등이 헌혈자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는 머리카락 한 올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유교적 인식이 피부족의 한 요인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혈액난을 타개하기 위해 혈액원 등을 운영하면서 종전과는 달리 실용적인 다양한 선물로 헌혈자를 유인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헌혈 캠페인이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우선돼야 하는데, 이웃과 더불어 산다는 공동체의식이 우선돼야 함은 물론이다. 언제까지 학생이나 군인들에 의한 집단헌혈에 의지할 수 만은 없는 노릇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