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등 주변 후발국들이 우리가 예전에 채택했던 방식을 본떠 물량 투입에 의한 개발전략을 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과거와 같은 국가경쟁력 전략에 의지해서는 한 발 더 앞서 나갈 수 없습니다."


고촉동(吳作棟) 싱가포르 총리는 지난달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대답했다.


1997년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2만6천달러를 넘어설 만큼 고속 질주했으나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쇠퇴하기 시작해 2002년엔 2만6백여달러로 물러섰다.


이같은 경제 위기를 '생산성 향상'과 '새로운 시장 개척'으로 돌파하겠다는 것이 싱가포르의 신(新)성장 전략이다.


한국은 물론 도시국가인 싱가포르와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경제 규모가 크고 싱가포르가 외국인 직접투자에 의해 성장해 왔던 것과는 달리 '차입에 의한 자본 조달과 저임금을 토대로 한 수출산업 육성전략'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나 '전통적 성장전략'이 한계를 맞은 것은 다를게 없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한국 노동부문의 경제성장 기여분은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1963년부터 70년까지 연평균 3.67%였으나 90년부터 2000년에는 1.6%로 떨어졌다.


주 5일 근무제 시행 등으로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이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노동 투입 주도형 경제성장'은 이제 종착점에 다다랐다.


'차입형 경제개발 전략'도 한계에 봉착했다.


중화학공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79년부터 90년까지 자본의 성장 기여분은 연평균 1.9%였으나 이후 10년 동안은 1.4%로 떨어졌다.


최근에는 산업공동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남은 것은 '생산성 향상'밖에 없다.


자본과 노동 기술을 보다 효율적으로 결합시키고 총요소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이다.


90년대 신(新)경제 호황을 잉태한 미국의 '혁신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80년대 들어 과감하게 정부 규제를 풀어 기업 활력을 높이는데 주력해 잠재성장률을 1∼2%포인트 끌어올렸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중 5%대에 머물러 있는 잠재성장률을 7%대로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투입요소의 증대나 기술 개발만으로는 5%대의 잠재성장률을 이룰 수 없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되살아나지 않는 것은 투입 위주 성장전략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노동과 자본 기술을 효율적으로 결합시키는 생산성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국가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만이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타개책이라는 지적이다.


고촉동 총리는 2000년 11월 브루나이에서 열렸던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빨리 뛸 수 있는 사람들이 전혀 뛸 생각이 없는 사람들의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시장 개방에 '뜻이 맞는'국가들끼리만 문호를 개방하자는 제안이었다.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조차 결론을 내지 못하며 내부 갈등에 빠져 있는 한국사회를 국제사회는 언제까지 기다려주지는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국 등의 맹렬한 추격과 선진국들에 뒤진 생산성으로 불과 5∼10년 뒤면 국제경쟁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KDI는 1%대로 추락한 총요소 생산성을 2%대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잠재성장률을 5%로 유지하기 조차 어렵다고 분석했다.


국가 생산성을 매년 2%포인트씩 끌어올리는데 온 국민이 힘을 합쳐야 당면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현승윤 기자 hyun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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