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광고처럼 역사는 늘 1인자의 몫이었다. 그러나 1인자의 결함을 훌륭히 메운 2인자 또한 역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마오쩌둥이 군화까지 삶아먹어야 했던 대장정을 딛고 중국 대륙을 장악하기까진 저우언라이 없이는 설명이 안 된다. '인민의 등불'로 불린 저우는 마오와 함께 근 40년간 항상 반 걸음 뒤에 섰다. "마오가 없었다면 중국 혁명은 결코 불붙지 않았겠지만 저우가 없었다면 그 불은 타서 재가 됐을 것이다."(닉슨 전 미국 대통령) '지퍼 게이트'에도 8년간 임기를 무사히 마친 클린턴에겐 미 역사상 '가장 성공한 부통령'이라는 앨 고어가 있었다. 빌 게이츠가 세계 최대 부호가 된 것도 스티브 발머라는 걸출한 파트너가 있기에 가능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다짜고짜 "누가 2인자입니까? 비서실장입니까, 민정수석입니까"라고 물어 당사자들을 당황케 했다. 2인자는 문희상 실장도, 문재인 수석도 아닌 고건 총리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누구의 사람'으로 불리지 않는 것을 40여년 공직생활의 모토로 삼은 고 총리는 사실 그동안 잘 안 보였다. 이런 고 총리가 요즘 바빠졌다. 감사원장 임명안 부결 등으로 힘든 대통령 대신 부처간ㆍ이해집단간 첨예한 현안 조율의 총대를 멨다. 지난 27일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판교 학원단지 조성안을 없던 일로 매듭지었다. 이번 주에도 두 차례 조정회의(10월1,4일)를 예정해 놓고 있다. 위도 새만금 스크린쿼터 등 쟁점현안에서 그의 저서 제목('행정도 예술이다')처럼 실력 발휘를 기대해본다. 4분기로 넘어가는 이번 주에도 경제를 걱정해야 할 뉴스가 많다. 주초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한국은행의 국정감사(29∼10월1일)는 부실 경제운용과 금융 불안에 대한 성토장이 될 전망. 또 8월 산업활동동향(29일)에선 잦은 비와 파업사태를 감안할 때 회복조짐을 찾기 어려울 듯하고 9월 소비자물가(30일)로 걱정거리만 늘 것 같다. 고령자통계(10월1일)는 실버채용박람회(2∼5일, 한경ㆍMBC 주최)에 문의가 쏟아지는 이유를 보여줄 터이다. 참여정부 7개월간 경제를 옥죈 악재를 꼽으려면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북핵, 이라크전쟁, 분식회계, 카드채 대란, 부동산 투기붐, 물류대란, 파업, 잦은 비, 태풍, 환율ㆍ유가쇼크…. 운도 없었지만 현안을 풀어가는 능력에 대한 의구심으로 국민 노릇이 정말 힘겹다. 가을 하늘 같은 희소식은 없을까. 없다면 이승엽의 56호 홈런이라도 터졌으면 좋겠다. < 경제부 차장 ohk@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