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재벌규제 완화를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벌였던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2년만에 같은 주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재경부가 지난 18일 예정에 없이 사실상 폐지에 가까운 출자총액규제 개편방안에 대한 서울대 기업경쟁력 연구센터의 연구결과를 제시하자 '시장개혁 태스크포스(TF)'를 주관하는 공정위가 21일 TF의 공식 연구용역물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결과를 공개하며 출자총액규제 유지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비록 양측 모두 자신들의 공식 견해가 아닌 '연구용역 결과'라는 형태로 대리전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핵심 쟁점인 출자총액규제를 둘러싼 의견차는 당시보다 골이더욱 깊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 "출자한도 2배로" Vs "소유지배구조 왜곡 근본원인" 양 기관이 내놓은 연구결과는 모두 총수의 법적 소유권과 계열사 지분 등 실제영향력 행사지분의 차이라는 점에 착목했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나 내놓은 결론은 정반대다. 재경부가 받은 서울대의 연구결과는 기본적으로 출자총액규제가 재벌의 근본문제인 '순환출자를 통한 가공자본의 창출'을 막는 현실적 방법이라는 전제가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공자본 창출방지는 결합재무제표 제도로 해소할 수 있으며 출자규제는 오히려건전한 기업의 투자를 막는 잘못된 제도라는 해석이다. 나아가 총수의 법적 소유권과 실제 영향력 행사지분비인 '의결권 승수'를 기초로 재벌 소유구조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중핵기업'은 의결권 승수가 낮아 소유-지배간 왜곡이 적으므로 이 비율이 1.25배인 경우 자기자본보다 50%나 더 많은 비율까지 출자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그룹 전체로도 19가지나 되는 출자규제의 적용제외와 예외규정을 가능한 없애는 대신, 출자한도를 40∼50%까지 2배 가량 높여야 한다는 파격적 견해도 내놨다. 반면, 공정위에 제출된 KDI의 용역연구결과는 비율 대신 두 지분간의 차이를 계산한 뒤 이 비율이 커질수록 소유-지배권 왜곡이 심화되며 이 비율이 큰 재벌기업이수익성도 낮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또 사외이사제 등 기업 통제수단이 잘 작동하지 못하는 것도 총수의 계열사에대한 간접지배력이 현금투입지분보다 상대적으로 크다는데 기인하므로 그룹 전체에대한 출자한도가 강제되지 않으면 총수가 자신의 부담이 없이 다른 주주의 피해를가져오는 계열사간 출자를 통해 지배력을 높이려는 인센티브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론 모델에 따르면 총수가 자신의 실제 보유지분에 걸맞는 지배권만을행사해 소유-지배권간 왜곡이 축소될 때까지 출자총액규제를 그대로 유지해야한다는결론이 자연스레 도출된다. 나아가 KDI는 독립적 사외이사들이 사내 이사를 추천하는 것은 물론, 사외이사들만으로 구성된 기구가 임원의 보수와 계열사간 내부거래까지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는 방안을 3년내 실행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 치열한 논전..재계.시민단체도 가세 양 기관이 제시받은 연구결과는 단순히 부처간 견해차에 그치지 않고 그간 소액주주 운동을 둘러싸고 대립을 보여온 재계와 시민단체의 입장과 거의 일치하며 이를이론적으로 체계화했다는 점에서 흥미를 끌고 있다. 재경부의 연구용역을 맡은 서울대 이상승 교수는 "출자총액규제 완화방안은 공정위가 권장하고 있는 현행 지주회사제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라며 기업의 건전하고 생산적 투자를 막는 출자총액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반면, 참여연대에서 소액주주 운동을 이끌어 온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서울대의연구용역결과에 대해 "소유권과 지배권간 왜곡을 확대하고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더욱 커지게 할 우려가 크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일단 재경부는 보고서 파문이 확산되자 "재경부의 확정된 견해가 아니다"라며한 발 물러섰고 공정위는 전례없이 연구결과를 공개해 '맞불'을 놓고 있는 양상이다. 재경부의 연구보고서 공개 당시 외국 출장중이던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도 출자총액규제가 가공자본 방지의 효과적 방지수단이 못되며 사실상 폐지해야 한다는 재경부 보고서의 내용을 전해 듣고 상당히 불쾌해했다는 후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KDI 연구결과는 정부의 시장개혁 태스크포스가 공식 의뢰해받은 결과물이며 이를 토대로 3년간 시행할 시장개혁 로드맵을 작성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수기자 jski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