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가 출범 6개월을 넘겼다. 갖은 분규와 대란, 의혹과 스캔들로 한 순간도 바람 잘 날 없던 나날이었다. 그러니 정말 대통령 할 맛 안 난다 했어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못난 고집부리고,막가자는 식의 형국으로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냉정히 관찰하면 새로운 국정의 틀과 룰을 만드느라 애쓴 모습도 역력하다. 힘든 일들이 줄줄이 터지다보니 넋이 나간 듯 보인 적도 적지 않았고,뒤늦게나마 뼈아픈 학습의 결과 새삼 법질서와 공권력의 권위를 내세우기도 했지만,그래도 무던히 애를 쓴 것은 사실이다. 어느 덧 반년을 넘겼지만 상황이 호전될 것 같지는 않다. 딱한 일이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은 멀쩡한 장관을 불신임하고 나서 대통령에게 굴복을 강요하고 나섰고,이경해씨 자결을 계기로 대규모 농민시위가 예상되는 가운데,이라크 전투병 추가 파병 문제로 다시 나라가 들끓고 있다. 자칫 이러다가는 임기 내내 개혁다운 개혁 한 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이리저리 시달리다 끝나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한 일들 중에는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행정문화의 탈권위화 시도,인사혁신,언론·검찰과의 관계 재정립 등 힘든 일도 적지 않다. 거시적으로 볼 때,노무현 정부는 이제 막 임기동안 추진할 의제와 추진일정,즉 로드맵을 짜는 일을 마친 단계다. 아직 모든 것이 '공사중' 표지를 떼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잘못 뽑았느니 정권퇴진 운운 하는 야당의 막말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제 일을 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들이 너무나 많다. 이 정부에는 이렇다 할 밀월기간도 주어지지 않았고 여소야대에 여당까지 분열된 상황이라 정책의 추진수단조차 여의치 않았다. 만일 정부가 제 일을 제대로 못하고 우왕좌왕하거나 와해의 길을 걷게 된다면 결국 누가 피해를 입게 되는가. 야당은 박수를 치고 환영할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재난이 되지 않겠는가. 사실 우리는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는 싸움을 너무 오래 하고 있지 않은가. 결사반대를 외치고, 상대방을 거꾸러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종당에 남는 것은 상처 입은 패자들의 황폐한 손익계산서일 뿐이다. 우리는 치르지 않아도 될 수업료를 너무 오래 물고 있지 않은가.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면 너무나 안타까운, 끝이 뻔한 싸움이다. 정부 실정에 대한 비판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연권이지만, 지금 시대상황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좀더 냉철한 머리로 생각하고 인내할 것을 요구한다. 울화가 치밀어도 참고 상대방이 없으면 자신도 없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여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판도 하고 욕설도 퍼부을 수는 있지만, 정부가 제 일을 할 수 있도록 참고 지켜봐줄 줄도 알아야 한다. 사실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여 갈등과 모순을 완전 종식시키는 일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유효한 문제해결, 즉 결론도출의 룰을 만들고 그것을 실천을 통해 정착시켜 나가는 일이다. 가령 이라크 전투병 추가 파병 문제는 여론을 폭넓게 수렴한 후 국회에서 토론을 거쳐 결정한다든가, 농산물시장 개방문제는 이해관계자들의 참여하에 일정한 절차를 거쳐 결정해 나가겠다는 의사결정의 방법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채택하고 그에 따라 결정을 해 나가야 한다. 대화와 타협은 이러한 의사결정방법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신뢰의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야말로 현명한 사회에 필요한 무형의 절대자본이자 공생의 지혜인 것이다. 정부는 어차피 임기 내에 좋은 소리 듣기는 틀렸으니, 돌팔매질을 당하더라도 올곧게 제 갈 길을 가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참고 기다리는 말없는 다수가 있음에 위안을 삼을 일이지만,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골을 내서는 안 된다. 혹 박수를 받는다면, 정권이 퇴장한 후 한참 뒤에야 가능할 테니 크게 기대할 것은 없다. 남은 길은 오로지 가시밭길 뿐이다. joonh@snu.ac.kr -------------------------------------------------------------- ◇ 이 글의 내용은 한경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