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칸쿤의 실패를 기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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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차원의 성장과 개발을 위해 다자간 무역체제가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합의 도출에 실패한 것을 보고 좌절감을 맛봤다.
하지만 정치적 통찰과 책임감,그리고 약간의 인내심을 갖고 냉정하게 본다면 이번 실패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도 있다.
이제 와서 책임 공방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절대론자,정치적 태도로 일관한 자,주고 받을 줄 모르는 자,성공에 대한 확신이 없는 자들이 모두 공범이기 때문이다.
협상 시스템에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다자간 무역체제가 아닌,보다 쉬운 대안을 찾거나 완고한 나라에 위협을 가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하지만 국가 대 국가의 상호주의나 지역주의는 가치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물론 유럽연합(EU)같이 예외도 있지만 이런 접근법은 무역과 투자를 왜곡시키는 기회주의적 모험으로 빠지기 쉽다.
게다가 지역주의로는 세계 경제권에 편입되기 위해 다자적인 지원이 꼭 필요한 국가들을 도울 수 없다.
지금까지 WTO의 사각지대였던 이런 분야들은 앞으로 도하라운드를 거쳐 시정될 것이다.
하지만 도하라운드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짚고 넘어갈 문제들이 있다.
각국은 이제 WTO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지난 몇 년 간 개발도상국들의 발전과 권리를 위해 많은 조치들이 취해졌다.
하지만 많은 개도국은 보호주의,지나친 관료주의와 부패 문제로 스스로의 발전 가능성을 희석시켜 왔다.
WTO는 원조기구가 아니다.
경제 개혁과 시장 개방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정부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련의 규칙과 약속들이다.
이는 다른 시장뿐 아니라 자기 시장에 대한 개혁과 개방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아직도 예측불허의 높은 관세와 억압적인 투자 정책,높은 규제의 벽이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라고 믿는 정부가 있다면 오산이다.
칸쿤에서 새 시대에는 강력한 개도국 집단이 전면 부상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G22를 이끄는 중국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향후 수십년간 가장 역동적으로 성장할 경제권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WTO의 균형도 바뀔 것이다.
이는 발전적인 현상이며 다자간 무역체제도 이러한 실정에 맞게 변화해갈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힘을 가지려면 현 체제와 다른 개도국에 대한 무거운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들도 이제 현실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도하라운드에 무엇을 기대하고,얼마만큼 베풀 준비가 돼 있는지 검토해야 할 때다.
투자,통상,경쟁정책,정부조달투명성 등을 담은 싱가포르 이슈는 미결과제로 남아있다.
특히 농업이 핵심 이슈다.
선진국들은 새로운 제도와 규범이 개도국에 어떤 정치적,재정적 부담을 주는지를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개발도상국들도 함께 건설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칸쿤 회의를 계기로 WTO 협상 시스템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된 사람은 로버트 죌릭 미국 무역대표와 파스칼 라미 EU무역담당 집행위원만은 아닐 것이다.
WTO 시스템이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간극을 지금은 메워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WTO의 기능과 역할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려해볼 때다.
이를 위해 내가 현재 의장을 맡고 있는 자문위원회가 개선 가능성을 모색하고있다.
실패를 기회로 만들려면 칸쿤회담을 대충 얼버무리고 끝내서는 안된다.
정리= 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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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993∼95년 WTO 사무총장을 지낸 피터 서더랜드가 파이낸셜 타임스에 최근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