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쌀 재협상을 앞두고 정부 고위관료들의입에서 쌀의 관세화 개방을 시사하는 발언이 잇따라 나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 방침의 변화는 없다는게 주무 부처인 농림부의 설명이지만 농심(農心)이 더없이 악화된 상황에서 나온 이들의 발언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논란을 낳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이와 관련, 17일 성명을 발표하는 등 농민단체의반발도 가시화되고 있다. ◆고위관료 잇단 관세화 개방 시사 = 김진표 부총리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5일국정홍보처의 인터넷 사이트 `국정브리핑'과의 인터뷰에서 "활발한 경제교류를 하기위해 그리고 더 나은 우리 나라의 미래를 위해 쌀 개방은 이제 불가피한 시대적 선택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는 "우리의 입장만을 주장하기는 어렵다. 우리도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면서 쌀 개방 문제를 언급한뒤 "농산물 개방에 대비해 농업의 구조조정을 꾸준히확고하게 추진해 나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의 발언은 정부내 통상 전문가들 사이에서조차 쌀의 관세화를 통한 개방을 주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쌀은 우루과이라운드(UR)때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을 2004년까지 소비량의 4%까지 단계적으로 늘리면서 수입하는 것을 전제로 관세화를 유예받았다. 허상만 농림부 장관도 지난 4일 KBS1라디오 `농수산 정책진단' 프로그램 녹음도중 "결국 쌀 재협상에서 지금처럼 관세유예로 가든지, 포기하더라도 이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쌀 재협상 질문을 받고 "DDA(도하개발아젠다)에서 모댈러티(협상 세부원칙)가 만들어진뒤 이를 근거로 쌀 재협상을 할 계획"이라면서 이처럼 말했으나 7일 새벽 방송에서는 해당 부분이 삭제됐다. 농림부는 그동안 관세화 유예를 언급하면서 유예를 받을 경우 최소시장접근(MMA)물량의 증량 등 상응하는 보상요구가 있을 것이므로 고민이다는 식으로 설명해왔으나 장관이 `포기'라는 용어까지 외부에서 사용해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발언 진의는 = 김 부총리 등의 발언은 쌀의 관세화 불가피성에 대한 정부내공감대가 형성된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낳을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의견 제시로 일단 관측된다. 주무부처인 농림부 당국자들도 2004년 쌀 재협상에 대한 공식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즉, DDA 농업협상에서 관세감축률 등을 담은 세부원칙을 결정하면 이를 토대로쌀 재협상에 나서 관세화 유예를 고수할 경우 미국이나 중국 등 쌀 수출국의 MMA 물량 증량 등 요구와 관세화시 수입확대 예상물량 등을 비교해 시장 충격이 작은 쪽을택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해당 발언은 정부내 물밑 기류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소신 있는 통상 전문가들도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언젠가는 공론화할 필요가있다는 의견을 제시해왔다. 실제 농림부내에서도 관세화 유예를 고수할 경우 관세화로 인한 수입 확대물량이상의 MMA 물량 증량 요구가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관세화 불가피론이 상당히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우리 정부는 UR때의 경우 식량안보, 환경 등의 이유도 있지만 농가의 반발을 고려한 정치적인 부담 때문에 협상 막판까지 쌀 개방 절대 불가원칙에만 매달리다가 `우물안 개구리'처럼 다른 분야에서 손해만 본 경험이 있다. ◆발언 부적절성 논란 불가피 = 그러나 이들의 발언은 농민운동가인 이경해씨가자살하고 궂은 날씨로 작황도 좋지 않아 농심(農心)이 악화될 대로 악화돼있는 상황에서 나온 만큼 논란이 예상된다. 물론 정부는 필요하다면 신중하게 쌀 관세화 문제도 검토해볼 수 있고 투명하게이를 공개해 농민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이경해 씨의 장례를 앞둔 시점에서 나온 김 부총리의 발언이나 멕시코칸쿤 제5차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참석 직전의 허 장관 발언이나 시기적으로는 적당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외국과의 대외 협상보다 국내 이해관계자를 다독이기 위한 대내 협상이 더 중요한 농업 개방 문제에 있어 공론화는 전략과 전술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는게 통상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에 비해 이번 발언은 공론화 차원에서 어떤 전략을 갖고 나왔다기 보다는 무의식적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말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안그래도 농심이 악화돼있어 정부 당국자의 무분별한 발언이 농민들을 자극해농민시위 등 대규모 반발을 촉발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는 김 부총리의 발언과 관련, 성명서를 내고 "망언의진의를 밝히고 정중히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책임추궁과 재발방지 약속을 촉구했다. 이 단체 관계자는 "시기적으로 너무 민감한 상황이어서 농민들을 자극할 수 있다"면서 "정부 당국자들이 경거망동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부 일각에서도 김 부총리의 발언과 관련, "파장에 대해 별 고민없이 얘기한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쌀 관세화 개방은 `핵폭탄' 쟁점 = 지난 90년대 초반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이끌던 문민정부는 UR 협상에 임하면서 쌀에 대해서는 MMA물량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개방 절대 불가 방침을 세웠다. 협상이 타결된 93년 당시 쌀 소득은 농업소득의 40.8%, 농가소득의 20.3%를 차지할 정도로 농가에 미치는 영향이 컸던 만큼 쌀 개방을 받아들이기에는 정치적으로부담스러운 문제였다. 그러나 미국 등의 통상 압력에 밀린 우리 정부는 결국 쌀 관세화를 유예받는 조건으로 MMA 물량의 수입은 허용했고 2004년에 쌀 관세화 유예 문제에 대해 재협상을벌이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의 경우 쌀 소득의 비중은 농업소득의 46.9%, 농가 소득의 21.6%에 달했으며 농민단체들의 입장도 거의 비슷하다. 결국 쌀 관세화 개방은 엄청난 농가의 반발을 살 사안인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경수현기자 evan@yonhap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