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무역기구(WTO) 제5차 각료회의가 끝내 각료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하고 종료됨에 따라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이 장기전으로 갈 공산이 커졌다. 1986년 출범한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상에서 시한을 3년이나 넘기며 94년에 최종 타결된 전례를 밟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칸쿤 각료회의의 최대 쟁점이 된 농업 분야 시장개방뿐만 아니라 투자와 경쟁정책(싱가포르 이슈)을 다자간 협상에서 규범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세계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향후 협상은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 농산물시장 개방안 대립으로 협상 결렬 이번 각료회의가 결렬하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싱가포르 이슈에 대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의견차였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농업 분야 시장 개방에 대한 각국들의 입장 차이에서 비롯됐다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농업 부문의 완전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 등 농산물 수출국들과 한국 등 수입국들은 회의 첫날부터 첨예하게 맞섰다. 이번 칸쿤 회의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개발도상국들의 목소리가 컸고 미국과 EU 등은 협상을 주도하지 못했다. ◆ 쟁점으로 떠오른 싱가포르 이슈 싱가포르 이슈란 1996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WTO 각료회의에서 다자규범 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 의제들을 말한다. 투자, 경쟁정책, 무역원활화, 정부조달 투명성 등 4개 분야가 그 대상이다. 이 중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분야는 투자와 경쟁정책이다. 선진국들은 기업 투자를 보호하기 위해 투자가 집행되기 전부터 권리보호를 할 수 있는 다자간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선진국들은 또 개도국들에 불공정경쟁 규제 법령을 제정하도록 압박했다. 이에 대해 대다수 개도국들은 '경제개발 우선' 정책과 상충되는 데다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라는 이유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수출입절차 간소화를 규정한 '무역원활화'와 '정부조달 투명성'과 관련된 법령 개정에서는 양측이 어느 정도 의견 접근을 이룬 상태다. ◆ 향후 전망은 불투명 WTO는 오는 12월15일 이전에 회원국들의 장관급이 참여하는 일반이사회를 제네바 본부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사실상의 특별 각료회의를 연내 재소집키로 한 셈이다. 2005년 1월1일로 잡혀 있는 DDA 협상 시한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다. 그러나 앞으로 일정이 어떻게 될지는 '오리무중'이라고 정부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과거 UR 때도 한번 일정이 어긋나면 보통 6개월 정도의 공백 기간을 가졌다"며 "후속 회의가 조만간 열리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올해 일반이사회 회의가 열리지 못할 경우 협상 시한은 자연스럽게 2005년 이후로 늦춰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 4월 EU의 농업담당 집행위원과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교체되고 5월에는 헝가리 폴란드 등 10개국이 EU에 새로 가입하는 등 EU 내부 사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미국도 내년 11월에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어 협상에 나서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악의 경우 UR 협상과 마찬가지로 DDA 협정 발효가 4∼5년 연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수언ㆍ박수진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