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起澤 < 중앙대 경제학 교수 > 올 상반기 실질 국민총소득(GNI)은 작년보다 0.8%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이후 처음으로 국민들의 실질 구매력이 하락한 것이다. 그래도 정부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3%대는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 주말에 들이닥친 태풍 매미로 이 것마저 불투명해졌다. 작년 12월 대선 공약에서 현 정부는 GDP 7% 성장을 내세웠다. 물론 올해부터 그렇다고는 하지 않았다. 임기 내에 7% 지속성장이 가능한 기반을 닦아 놓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경기침체는 7% 성장 공약을 위한 경제체질 개선에 수반된 불가결한 현상인가. 물론 아니다. 그 주요 원인은 누적된 가계부실에 따른 소비감소이다. 그러나 기업투자 부진도 한몫하고 있다. 전년 대비 올 2분기 설비투자가 0.8% 감소했다. 카드 빚으로 대표되는 가계부실은 지난 정부로부터 물려 받은 유산이다. 그러나 투자 부실은 현 정부의 불투명한 경제정책에 기인한다. 계속되는 노동쟁의, 어정쩡한 기업규제, 무너지는 공권력 등 그 이유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런 환경 속에 기업가의 '동물 정신'이 발동해 투자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 "현 정부 들어, 말만 많았지 이루어진 것이 없다"는 비판이 거세다. 그래도 정부는 할 말이 있다. 주요 경제현안 처리가 정치권의 눈치 보기로 지연됐거나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주 5일제 근무제는 우여곡절 끝에 정부원안대로 국회를 통과했으나 처리 지연으로 노사관계를 악화시켰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은 이번 정기 국회에 상정돼 있으나 그 통과가 불투명하다. 칠레 하원은 이미 한·칠레 FTA 비준 동의안을 반대 없이 통과시켰다. 한·칠레 FTA는 그 실질 내용 못지않게 상징성이 매우 크다. 우리가 최초로 맺게 되는 FTA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다자간 협정과 동시에, 많은 국가가 FTA에 의한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이미 작년에 FTA를 체결했으며 지난 주에는 부시 대통령이 미국과 칠레,미국과 싱가포르의 FTA에 서명했다. 2005년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3백여개의 FTA가 발효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전 세계적 FTA 체결의 행진 속에 우리만 고립되면 대외무역의존도가 70%에 달하는 우리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FTA 체결 지연으로 이미 우리의 대 칠레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칠레간의 FTA가 최근 발효되면서, 칠레가 수입선을 EU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40년간 세계경제의 개방확대에 가장 덕을 본 국가는 우리나라이다. 우리는 자원빈국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수출지향적인 경제성장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칠레를 시발로 하여 2년내에 싱가포르 일본과 FTA를 체결하고 나아가 중국으로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FTA는 동북아 경제 협력의 기반이다. FTA는 관세철폐와 투자유치뿐만 아니라 긴밀한 경제 정책 공조관계까지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현재 멕시코 칸쿤의 제 5차 WTO 각료회의에서, 농산물관세 상한 설정 문제로 선진국과 개도국이 첨예하게 대립돼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농민 한 명이 자결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몸을 바쳐 목적을 관철시키려는 뜻을 이해는 하지만, 이번 사건은 우리 국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 세계가 9·11 자살테러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격렬한 파업, 미군탱크 점령 등으로 각인된 전투적인 국가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킬 뿐이기 때문이다. 누가 이런 국가와 교류를 원하겠는가. 이 사건을 계기로 FTA 등 농산물 시장개방에 대한 농민단체들의 반대는 더욱 격렬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TA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이다. 정치권에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한·칠레 FTA 협정안을 조속히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 hongecon@ca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