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국민소득 세계 1위, 국가신용도 세계 1위, 노동생산성 세계 1위, 국가경쟁력 세계 3위.' 독일 프랑스 벨기에에 둘러싸인 인구 44만명의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의 경제력 지표다.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가운데 하나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룩셈부르크는 알고 보면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다. 하지만 수도 룩셈부르크시티에 들어서면 현대식 고층빌딩 같은 부국(富國)의 화려함보다 중세의 요새처럼 생긴 각종 회색 건물들이 줄줄이 눈에 들어온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인 룩셈부르크는 19세기까지 4백년 동안 스무차례 이상 외침을 받았다. 때문에 외부세력의 '봉쇄'가 룩셈부르크에서는 항상 최대의 고민거리이자 과제였다. 험한 능선과 계곡을 따라 방어벽처럼 들어선 각종 건물도 그런 역사의 흔적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외침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를 가두었던 이 나라가 부자 나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개방'이었다. 2002년 헤리티지 재단이 발표한 경제개방 순위는 홍콩과 싱가포르 뉴질랜드에 이어 4위다. 룩셈부르크가 시장을 개방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다. 외국기업과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문을 활짝 열었다. 성공의 열쇠는 단점을 장점으로 활용하는 역발상. 외국 지배를 많이 받아 외국문화에 익숙하다는 것을 활용,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글로벌화된 인력들을 적극 육성했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불리한 지리 조건을 역으로 이용, 유럽의 주요 도시를 비행기로 1시간 만에 갈 수 있는 '유럽의 심장부'라고 홍보했다. 룩셈부르크는 외자유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다. 룩셈부르크 코마베르그 지역에 위치해 있는 미국계 타이어회사인 굿이어 공장. 최고 권위의 왕실 옆에 공장이 들어선 것이다. 원래는 공장 부지도 왕실 소유였다. 세계적인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룩셈부르크 왕실은 흔쾌히 뜰을 내줬다. 굿이어 룩셈부르크법인의 인사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실비아 지첸은 "어느 나라에서도 외국기업을 위해 이같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사례는 없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자연히 룩셈부르크에 대한 깊은 신뢰가 쌓였고 사업 실적도 좋아 지금은 유럽 시장 진출의 전진기지로 자리잡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룩셈부르크에는 현재 듀폰 허스키 TDK 델파이 등 세계적인 다국적 회사들이 진출해 있다. 시장 개방을 통한 외자유치와 함께 산업 다각화도 추진됐다. 룩셈부르크는 전통적인 철강강국이다. 60년대만 해도 철강회사 아베드(세계 최대철강회사 아르셀로의 전신)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했었다. 그러나 70년대 오일 쇼크를 거치면서 철강산업이 급속도로 기울어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어야 했다. 룩셈부르크는 해외 금융회사 유치로 이 위기를 극복했다. 외국인에 대해 이자소득세율을 0%로 낮추고 예금자에 대한 비밀을 철저히 지켜준다는 '비밀보호법'을 제정했다. 그 결과 8백여개의 국제 금융회사가 룩셈부르크에 둥지를 틀었다. 최근에는 멀티미디어를 비롯한 정보통신 산업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유럽 최대 위성방송사 SES, 룩셈부르크의 오디오피나, 독일의 미디어그룹 베르텔스만이 공동소유하고 있는 유럽 최대 방송사 RTL그룹이 있고 최근 위성과 연계한 다양한 IT업체들이 속속 입주했다. 룩셈부르크는 이처럼 개방을 통해 외국기업을 끌어들이고 산업구조를 다양화함으로써 85년 이후 15년 넘게 연평균 5.5%의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부족한 노동력은 외국 인력으로 메웠다. 룩셈부르크에서는 외국인(foreigner)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대신 룩셈부르크인이 아닌 사람(non-luxembourger)으로 부른다. 그만큼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는다. 현재 전체 인구중 40.1%가 외국인이고 독일과 프랑스 등 주변국가에 살면서 국경을 넘어 통근하는 인력도 37.5%나 된다. 룩셈부르크 자체가 작은 코스모폴리탄인 셈이다. 룩셈부르크에는 경제발전위원회(BED)라는 독특한 협의체가 있다. 기욤 왕세자가 위원장을 맡고 있다. 정부 노조 사용자 대표들이 참여, 룩셈부르크의 사회 경제 정책 등에 대해 논의하는 기구다. 특이한 것은 BED에서 해외 프로모션 투어를 통해 외국기업을 유치하고 있다는 것. 정기적으로 왕세자가 단장이 돼 경제사절단으로 해외를 방문, 룩셈부르크의 투자환경을 설명한다. 2001년 기욤 왕세자는 첫 프로모션 투어로 한국을 찾았다. 우연하게도 아버지 앙리 국왕이 왕세자 시절 경제사절단장으로 첫 방문한 나라도 한국이었다. "왕세자가 직접 국가 홍보를 하는 것은 경제를 아는 것이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인식에서부터 비롯됐어요. 그만큼 룩셈부르크에서 경제는 어떤 부분보다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외무부 경제담당 장클라우드 크네블러는 약소국 룩셈부르크가 세계 최고의 강소국이 될 수 있었던 바탕에는 경제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룩셈부르크시티=김미리 기자 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