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19일 입법예고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특징은 '출자총액제한제도 현행 유지'와 '공정위 계좌추적권 5년 연장'으로 요약된다. 공정위는 출자규제 실효성 제고라는 '명분'을 경기침체 탓에 일단 양보했지만 계좌추적권 시한 연장이라는 '무기'를 대신 얻어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강철규 공정위원장이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계좌추적권 5년 연장안은 경제부처들과 조율을 거쳐 마련된 안"이라고 소개한 반면 재정경제부에선 "출자규제 강화는 안된다"고 못박은 부분이 이 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이 밖에 지주회사 문턱을 낮추는 대신 자회사간 출자를 금지시키는 등 지주회사 제도를 정비한 것이나 소비자들을 위해 손해배상 청구제도 활성화안을 마련한 것도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다. ◆출자규제 왜 빠졌나 공정위는 새 정부 들어 줄곧 출자규제의 예외인정 및 적용제외 조항이 19개에 달해 실효성이 떨어지고 '졸업제'(부채비율 1백% 미만인 대기업집단을 규제대상에서 빼는 규정)도 본래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지난달 말 공개된 대기업집단 출자구조 분석 결과도 출자총액 초과분의 51%가 예외인정되는 등 규제의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출자규제안에 대해 당분간 현행 유지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강 위원장은 "9월 말 '시장개혁 3개년 계획'이 나오면 그때 가서 출자규제 관련 법 개정여부에 대한 입장을 다시 밝히겠다"고 했지만 경기침체와 관련 부처들(특히 재경부)의 반대를 감안하면 올해 출자규제 개편안 마련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관계자는 "여야가 경쟁적으로 기업투자 활성화를 위해 재정·세제·금리정책을 펴는 상황에서 출자규제 강화안이 국회를 통과하겠느냐"며 현실적인 어려움도 토로했다. ◆계좌추적권 연장 논란거듭 공정위 계좌추적권에 대해서는 부처간 합의로 '5년 연장'안이 입법예고됐지만 앞으로 논란이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신종익 전경련 상무는 "일몰기한을 정해놓은 법령을 계속 연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시장경쟁을 제한하지 않는 내부거래를 계좌추적을 통해 규제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은 "부당 내부거래의 80% 이상이 금융회사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계좌추적권이 필요하며 당연히 상설화돼야 한다"며 "나아가 위장계열사 내부거래도 계좌추적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 소송부담 급증 우려 공정위는 이번 법 개정안에서 소비자 피해보상권 강화를 위해 손해배상 청구제도도 손질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에는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고의·과실'이 없더라도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무과실 책임' 규정이 있다. 그러나 이는 공정위의 시정조치가 확정된 뒤에만 가능하다. 기업이 공정위 시정조치(과징금,시정명령 등)에 이의를 제기,고등법원 등에 소송을 제기하면 시정조치가 확정되기까지 길게는 2∼3년이 걸리기도 한다. 때문에 무과실책임 규정은 소비자들이 사실상 이용하기 힘든 규정이었다. 공정위는 내년 4월부터는 공정위 시정조치 확정 전에라도 소비자가 손배소를 내면 기업이 무과실책임을 지도록 할 방침이다. 또 피해자가 입증하기 힘든 손해액도 법원이 임의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 피해자 부담을 덜어주는 내용도 개정안에 담았다. 재계에선 그러나 "공정위 시정조치 전에 민사소송이 가능하도록 길을 터주면 소송대란이 일어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어 역시 논란이 예상된다. 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