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가 하이닉스에 대해 44%가 넘는 상계관세율을 결정한 데 이어 국제무역위원회(ITC)도 미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실질적 피해가 있음을 결정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정부의 보조금이 자유무역을 인위적으로 왜곡시키기 때문에 그 지급된 보조금 수준까지의 상쇄조치인 상계관세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의 하이닉스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가 확정됨에 따라 오는 8월 예정된 유럽연합(EU)의 상계관세 부과도 거의 확정적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반도체시장에서 삼성전자,미국의 마이크론 및 유럽의 인피니온과 함께 각축을 벌이던 하이닉스는 미국과 유럽 시장을 상실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상계관세라는 통상법제도를 활용한 미국과 유럽 기업의 한국 기업 밀어내기 공조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하이닉스에 대한 상계관세조사 과정은 미국 기업과 미국 정부의 긴밀한 공조를 확인시켜 준다. 그 동안 마이크론은 한국 반도체산업과의 힘겨운 경쟁에서 벗어나고자 줄곧 한국 정부가 하이닉스에 부당한 보조금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면서 미국 행정부로 하여금 공식·비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한국 정부에 제기하도록 요청해왔다. 마이크론이 하이닉스 인수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의 한국 정부에 대한 이의 제기는 잠잠했고,마침내 마이크론의 하이닉스 인수가 실패하자 미국 의회는 행정부에 하이닉스에 대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를 제출했다. 하이닉스에 대한 상계관세의 부과는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결정된 것이다. 따라서 하이닉스에 대한 이번 상계관세 부과는 미국 내의 치밀한 정치적 내지 정책적 고려에 따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이번 조치로 한국 경제는 작년에 부과된 철강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에 뒤이어 또 한번 큰 타격을 받게 됐다. 다행히 최근 WTO의 패널은 미국의 철강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가 WTO 규범에 어긋난다는 결정을 내렸다. 한국 정부는 하이닉스에 대한 미국의 상계관세 부과도 WTO 규범에 어긋난다며 이미 미국에 협의를 요청해 놓고 있다. 협의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WTO 차원의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 해결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EU도 조만간 하이닉스에 대한 최종적인 상계관세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에도 정부는 WTO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하이닉스 문제는 WTO 차원에서 해결돼야 할 것이므로 한국 정부가 치밀하고 끈질기게 미국과 EU를 상대로 분투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이 사건을 WTO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것은 그동안 다소 막연하게 주장되던 한국 정부의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주장에 대해 쐐기를 박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보조금 주장은 자칫 다른 산업으로도 번져갈 수 있기 때문에 이번에 정부의 조치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올바른 조치라고 생각된다. 다만 한국 기업과 정부는 하이닉스에 대한 상계관세 부과에서 보여준 미국 기업과 정부의 긴밀한 협력 내지 '동일체'적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즉 미국 기업의 이해가 곧 미국 정부의 이해가 되는 것이다. 의회가 미국 기업의 보호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이렇듯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의 크고 작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물론 한국 정부도 지난 몇 년 동안 '경제외교'의 기치 아래 한국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WTO 분쟁의 해결절차에서 미국을 포함한 여러 회원국을 상대로 수 차례 성공을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통상정책의 수립과 집행에 있어서 한국 정부의 실물경제 내지 기업의 어려움에 대한 이해나 태도는 아직도 낮거나 미지근한 수준에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냉철하게 검토돼야 할 것이다. 한국은 GDP의 70% 정도가 통상에서 산출되는 통상국가이다. 하이닉스에 대한 미국과 EU의 상계관세 부과는 결코 소홀하게 다룰 수 없는 사안이다. 이 점에서 한국 정부가 WTO에서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정부의 통상정책 수립과 집행이 기업의 경제활동 보호와 신장에 도움이 되는지 등의 체제적 문제도 깊이 검토돼야 할 것이다. wtopark@korea.ac.kr/한국통상법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