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다. 정전은 말 그대로 종전(終戰)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잠시 전쟁을 멈췄다는 의미일 뿐이어서,어느 한쪽이 선제공격을 한다면 정전협정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신세로 전락하게 됨은 물론이다. 정전협정이 결코 한반도 평화를 담보해주는 문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서명 당일의 상황만 보더라도 정전협정은 애초부터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판문점 근처에는 폭음소리가 진동했고 여기저기 고지에서는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계속됐다. 더구나 이 협정은 한국인의 참여 없이 유엔측 수석대표 해리슨 중장과 북한측 수석대표 남일 대장이 서명했는데,당시 기사를 보면 양측간에 악수는커녕 목례조차도 없었다고 한다. 화해의 정신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얼음장 같은 분위기였음이 쉽게 짐작이 간다.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이라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마치 시한폭탄을 안은 것처럼 지난 반세기를 살아왔다. 지금에 와서는 북핵문제가 불거져 또다시 전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지경이다. 게다가 북핵문제는 가뜩이나 침체된 경제를 더욱 수렁 속으로 밀어넣는 불안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 한편으로는 금강산 뱃길이 열리고 남북철도가 연결되고 개성공단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쟁 위험과 교류협력이라는 모순덩어리의 기이한 현상이 이 땅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전 50주년을 맞아 정전협정일을 '평화의 날'로 제정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된 이 운동은 '냉전과 대결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평화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평화의 날은 우리 의식 속에 존재하는 냉전적인 유산을 떨쳐버리고 '평화'를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로 삼자는 희망적인 기대가 들어있기도 하다. 6·25전쟁으로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정전협정은 전쟁도 평화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남아 지금 이 순간에도 무력충돌의 망령을 드리우고 있다.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면서 남북이 함께 평화의 날을 기념할 수 있는 그 때가 오기를 고대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