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의 하투가 가을 투쟁으로 번져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달말 본격적인 하계 휴가를 앞두고 연쇄 타결될 것으로 기대됐던 산업체의 임단협이 주5일 근무제 등 노동계의 핵심현안이 다시 수면 위로 급부상하면서 노ㆍ정 및 노ㆍ사간 힘 겨루기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20일 민주노총이 내놓은 '2003 임단협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6일 현재 교섭가능한 8백82개 노조중 73.9%인 6백52개 노조가 임단협 교섭에 들어가 이 가운데 32.8%인 2백14개 노조만 임단협을 타결했다. 이달초 노동부가 집계한 1백인 이상 사업장의 임단협 타결률도 지난해 같은 기간의 38.9%를 밑도는 32.3%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노사 교섭률이 지지부진한 것은 올해 노동계의 임단협이 근로자의 실질적인 임금개선보다는 주5일 근무제 등 정치이슈 관철을 목표로 설정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최대 사업장인 현대차는 지난주 초까지만 해도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고 정상조업에 임할 만큼 임단협 타결기대가 높았지만 주5일 근무제가 노ㆍ정간 이슈로 대두되면서 지난 18일 전면 파업으로 급선회했다. 노조는 정치 이슈화에 대한 조합원들의 낮은 지지율을 의식해 하계휴가 이전 타결을 선언하기도 했으나 중소 부품업체가 주류인 금속노조가 주5일 근무제를 관철하면서 위상 붕괴를 경계해 이같이 결정했다. 오는 23,24일 기아차 노조와 함께 주5일 근무제 관철을 위한 대정부 총력투쟁에 나서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노동계의 하투가 정부의 주5일근무제 국회 입법화를 계기로 다시 힘을 얻으면서 그동안 수면밑에 있었던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노조의 경영참여'도 다시 산업체 임단협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돼 조기 타결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현대차 사내하청업체 비정규 근로자 8천여명은 지난 8일 조합원 총회를 거쳐 노조를 공식 출범시키고 임금인상과 고용안정 등의 관철을 위해 실제 고용자가 아닌 현대차를 대상으로 교섭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임단협 중인 다른 대형사업장의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이에 영향을 받아 본격적인 조직화를 서두르고 있다. 화물연대도 21일부터 이달 말까지 파업 찬반 투표를 벌이기로 했다. 화물연대는 운임협상이 원만히 진행되지 않을 경우 다음달 전면 투쟁에 들어갈 방침이어서 이번 하투가 자칫 가을투쟁으로 번지지 않을까 산업계는 초긴장하고 있다. 현대차 등 산업계는 "주5일 근무제와 비정규직 처우개선 등 노동계의 주요 이슈에 대해 정부가 하루빨리 입법화를 하는 등 가이드라인을 정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그칠줄 모르고 계속되는 노동계의 하투를 관망만 하는 것 같다"며 "노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게 원칙이지만 이번 임단협은 그 성격이 다르지 않느냐"며 정부 태도를 비판했다. 산업계에선 노동계의 하투가 장기화할 경우 기업 줄도산이 불가피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노동 전문가는 "주5일 근무제, 비정규직 처우개선, 노조 경영참여 등 3대 핵심이슈 중 어느 하나도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정해준 것 없이 개별기업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며 "이런 방식은 노동계의 기대치를 한층 더 높여 자칫 문제점을 양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