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분배정책에 대한 오해..全周省 <이화여대 교수·경제학>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참여정부의 이념성향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동안은 현 정부의 진보적 노동정책을 공격하는 보수 진영의 목소리가 높더니 최근에는 약자에 대한 열정이 식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진보 진영의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가 어렵고 성잠잠재력에 대한 평가마저 밝지 않은 상황에서 이념 갈등에 정책능력이 소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정책논의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부터 중심을 잡아야 한다.
보수는 곧 가진 자들의 자기 방어 논리라고 공격하는 것이나,진보는 곧 제 살 깎아먹기라고 비하하는 것이나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이념성을 띤 정책일수록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정연해야 한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추구하는 성장정책과는 달리 주어진 몫을 나누는 분배정책은 집단이나 계층간의 갈등을 수반하기 쉽다.
사회구성원의 직업,소득수준,가치기준에 따라 무엇이 형평인가에 대한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투표와 같은 정치과정을 통해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많다.
바꿔 말해 민주사회에서는 어느 정도의 이념 갈등이 불가피하며,건전한 이념 논쟁은 다수를 만족시킬 수 있는 복지 수준을 찾는 통로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분배와 균형을 내세우는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은 방법론적인 개선의 여지가 많다.
사실 사회 각 분야의 지나친 불균형을 해소하겠다는 개혁의 기본 방향은 바람직하다.
큰 것이 효율적이라 하지만 규모의 경제에도 한계가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서울에 몰려 살고 몇 개 기업이 경제를 뒤흔드는 나라가 잘 될리 없다.
빈부격차가 커져 계층간의 갈등이 심화되면 근시안적인 복지 정책이 남발되기 쉽다.
따라서 적절한 수준의 분배정책은 정책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통해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다.
또한 금융시장 차입이 쉽지 않은 저소득계층 자녀의 인적자본 향상을 도울 수 있고,다양한 사회보험 제공을 통해 민간 경제주체의 생산적 모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론적 고려를 현실 정책에 응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우선 특정 재분배 정책이 경제적 합리성,이념적 확신,이익집단의 압력 중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또한 정부의 재정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행해지는 복지정책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성장저해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설사 성장잠재력을 생각한 분배정책이라 하더라도 설득이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이념갈등의 초점이 되고 있는 노사문제는 분배정책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하는지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오랫동안 직장은 곧 복지를 의미했다.
퇴직금과 각종 경조사에 대한 상호부조는 사실상 사회보장의 구실을 했다.
또한 평생직장이라는 고정관념 하에서 직장을 바꾸면 자질에 대한 의심을 받기 쉽다.
따라서 복지제도의 확충과 직업문화의 개선 없이 노동시장의 유연성만 강조하는 것은 경제적인 타당성과 정치적인 설득력이 모두 부족하다.
최근 들어 복지 수준이 높아지고 인력의 수평적 이동이 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이직에 따른 위험부담이 큰 과도기적인 상황이다.
이런 때일수록 자기 몫을 찾기 위한 목소리는 더 커지기 쉽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념보다는 불확실성에 대한 자기방어적 논리가 강하다.
시장이 흔들리는 이런 상황일수록 정부의 중재와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하다.
분배정책이 이념적인 외견을 띠지만 그 핵심은 정책능력에 있다고 보는 것도 이런 관점에서다.
특히 분배와 성장의 정책적 상충관계가 보다 첨예해지는 경기침체기에는 분배가 성장잠재력을 높인다는 논리만으로 다수를 설득하기기가 쉽지 않다.
방법론상으로는 얼마든지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는 네덜란드 모형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도 아쉽다.
진보적인 노동정책의 설득을 위해서는 우리의 특수한 노동환경을 앞세워야 할텐데 그 반대가 되니 명분이 약해지고 반격의 빌미만 제공하는 것이다.
경제적 효율은 시공을 초월할지 모르지만 형평성의 문제는 토착적인 정치 생리를 벗어나기 힘들다.
아직 경제정책 전반에 관한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한 현 정부로서는 분배정책의 입안과 집행에 신중해야 한다.
동지가 될 수도 있는 중립적 개혁세력들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하는 현상은 이념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jjun@mm.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