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부산에서 기차표를 사서 평양과 북경 울란바토르를 거쳐 파리와 런던에까지 가 닿을수 있는 그런 시대를 열겠다는…. 누구든 꿈을 꾸는 것은 자유이고 통치자가 국가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넉달여가 지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진실을 덮어두고만 있을 수는 없는 시점이 온 것 같다. 민노총이 경제특구법 반대를 내걸며 파업을 벌이는 상황이고 국제 사회가 한국의 항로에 여전한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동안에는 동북아 중심은 물 건너 간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이다. 중심은 하나이지 둘일 수 없고 두 개의 동북아가 대립 항쟁하는 상황을 이제는 끝낼 때가 됐다. '하나의 동북아'는 경의선이 연결되고 북한과의 화해와 민족공존이 이루어지는 것에 그 출발점을 잡고 있다. 3면의 바다와 1면의 휴전선에 갇힌,다시 말해 섬 아닌 섬으로서의 냉전적 운명을 벗어던지고 대륙으로 한껏 뻗어가자는 이상론이 동북아중심국이라는 대통령의 포부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러나 '또 다른 동북아'는 경의선으로 연결되는 동북아와는 불행히도 거리가 매우 멀다. 외국인 투자의 중심이며 아시아경제의 허브요 경제특구로서의 동북아는 경의선으로 연결되는 대륙이 아니라 한국을 더한층 해양으로 밀어가며 글로벌 플레이어로 전환해가는 것으로 그 출발을 삼고 있다. 하나는 민족을,다른 하나는 세계를 말하는 두개의 동북아는 '동음이어(同音異語)'일 뿐 너무도 다른 종착역을 지향하고 있다. 그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차라리 반대되는 이야기라고 해야 옳다. 이 점을 분명히 하지 않고는 동북아를 둘러싼 허다한 토론과 주장,계획들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게 마련이다. 그것은 마치 동일한 개혁을 말하면서 한쪽은 좌파적 사회개혁을 다른 쪽은 우파적 시장개혁을 말하고 있는 작금의 착오적 언어관행과 다를 바 없다. 같은 개혁을 말하는 듯하지만 하나는 갈등하는 세력들 간의 사회적 합의를,다른 하나는 냉엄한 시장논리를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둘은 쉽사리 조화되기 힘들고 때로는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경의선의 동북아는 뜨겁지만 경제특구의 동북아는 차갑다. 그 차이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와 파업하기 좋은나라 만큼이나 크다. 노 대통령 취임 직후였던 지난 3월초 기자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그쪽 지식인들로부터 집중적으로 받았던 질문은 "한국은 이제 해양국가가 아닌 대륙국가를 지향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슬로건은 혹여 해양국가를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그래서 한·미·일 3각 동맹,다시 말해 태평양 체제를 내던지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때마침 반미시위며 촛불시위가 줄을 이었으니….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얼마 전 한 세미나에서 동북아 중심은 북한문제가 해결됨으로써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말이 화해협력과 개성공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우리의 정책실장은 무언가를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노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발음이 같다고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일본 한국을 묶어(미국은 빼고) 또 하나의 유럽연합처럼 발전시켜 가자는 웅대한(?) 구상과 외국인 경제특구라도 만들지 않으면 당장 동북아의 낙제생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갖는 거리는 너무도 멀다. 그 차이는 또한 변방과 중심,원심과 구심 만큼이나 모순적이다. 청와대는 언제까지 순진한 언어의 혼동 속에 빠져 있을 것인가.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