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만고 끝에 화의를 탈출해 회사를 안정시켜 가고 있는데 거래하는 대기업들이 파업투쟁을 벌인다니 조마조마해서 죽을 맛입니다." 현대자동차 등에 전자유압밸브 등 자동차부품을 납품하는 유니크사(경남 김해시)의 하영복 노조위원장은 "과거에도 대기업의 장기파업 유탄을 맞아 쓰러지는 중소기업들을 봐왔다"면서 "대기업 직원들은 임금 등 복지후생에서 우리(중소기업)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풍족한 것으로 아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 위원장은 "지난 99년 1월 부도난 뒤 직원들을 절반 이상 감축하는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지난 18일 화의에서 벗어나 회생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며칠만 납품이 끊기면 또다시 주저앉을지 모른다"며 노심초사했다. 그는 "자동차 내수판매가 최악인데 파업이 확산되면 대기업은 버티지만 중소기업은 견딜 재간이 없다"며 "정부는 대기업 노조에만 신경 쓰지 말고 중소기업 노조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고 말해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25일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공장라인이 일부 중단된 울산의 영풍기계 최경식 노사협의회 근로자 대표는 "대기업의 파업충격이 하청중소기업에 얼마나 치명적으로 와닿는지 현대차 조합원들이 조금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최 대표는 "현재 현대차 노조원들과 하청업체 노조원간 임금이 배 이상 차이가 난다"면서 "현대 노동자들이 하청업체 동지(노동자)들을 배려한다면 파업만은 하지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열교환기를 생산하는 조선기자재업체인 부산의 동화엔텍 김재술 노조위원장은 "주5일 근무제, 비정규직 문제 등은 정치성향을 띤 사항인 만큼 시간을 갖고 노ㆍ사ㆍ정이 차근차근 대화로 풀어나가야 하는데 강성노조들이 무조건 정부의 친노성향만 믿고 밀어붙이고 있다"며 "이런 노선은 일선 노조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중국의 조선업계가 무섭게 따라오고 있다"며 "이같은 급박한 상황에서 국내 조선소들이 조업을 중단하는 총파업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강조했다. 수도권 중소기업과 하청업체들은 대기업 중심의 파업 사태를 '꽁꽁 얼어붙은 제조업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민노총과 대기업노조들에 대한 반감은 노사 구분 없이 터져나오고 있다. 인천소재 목재가공업체 E사 노조의 박모 사무국장은 "모두 어려운데 꼭 이래야 하냐는 소리가 노사 가릴 것 없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며 "(파업하면) 대기업이야 버틸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재고부담에서부터 추가 자금소요, 노동계 분위기에 휩쓸린 노사불안 등에 3,4중고에 시달리게 된다"고 호소했다. 금속부품을 납품하는 J금속의 이승재 사장은 "물건을 팔아 대출이자 갚기도 바쁜 상황이지만 생산성 향상을 믿고 올해 10% 임금을 인상하기로 노조와 합의했는데 만약 납품처(대기업)에 파업이 벌어지면 '도산'이 확실시된다"면서 "대기업 노조들이 '하투(여름투쟁)'를 벌인다는 뉴스를 접한 이후부턴 밤잠이 안온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에 섀시부품을 직접 납품하는 T사(인천 연수)의 박모 대표는 발주가 취소되는 바람에 10억원어치의 재고가 창고에 쌓여 고민 중이다. 박 대표는 "정상적인 발주라도 대기업의 조업 사정에 따라 납품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하루도 편하게 경영을 해본 적이 없다"고 씁쓰레했다. 김태현ㆍ김희영ㆍ하인식 기자 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