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jpark@kgsm.kaist.ac.kr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하나같이 교수라는 나의 직업을 부러워한다. 별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65세까지는 정년이 보장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어쩌다 가르치는 직업을 선택해 이제 25년이 되어가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10여년의 교수직이 더 남아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일류기업에서 잘 나가던 임원 친구들도 어느날 갑자기 집에서 노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가끔 아내와 나의 마지막 직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가 만약 은퇴후에도 건강하게 산다면 무엇을 할까? 그림이나 판소리도 배우고 싶고 역사 공부도,여행도 하고 싶다. 그러나 거의 확실한 주업(主業)은 나의 아버님이 마지막을 보내신 시골 과수원의 농부가 되는 것이다. 평생 공부만 하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농부가 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마지막은 흙과 함께 해야 할 숙명 같은 것을 느낀다. 농사일을 하면서 동시에 사회봉사도 하고 싶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50여년을 나만을 위해 살았으니 남을 위해서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더 욕심을 낸다면 외딴 섬이나 벽지의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일도 하고 싶다. 나는 환경이 여의치 못한 아이들도 잘 키우면 사회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이 생각에 대해 아내의 의견은 크게 다른데 그 이유는 어린 아이들이 유행에 민감한 젊은 선생님보다 고리타분한 할아버지 선생님을 좋아하겠느냐는 것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 1백세로 가고 있는 요즘이지만 기업 수명은 30년에서 오히려 더 짧아지는 추세다. 피터 드러커가 지적한 대로 한 사람이 한 직장에서 한가지 직업으로 생을 마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태어나서 5년간은 부모 슬하,이후 20년간은 학교 교육,30년간의 직장생활,그리고 그 후 30년 가까이를 무직으로 지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30년을 별다른 준비 없이 맞고 있다. 개인주의가 극도로 발달한 미국사회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것은 자원봉사를 통한 사회활동이 가교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순수 NGO는 물론 사회복지시설이나 박물관,공항의 안내 데스크 같은 곳에서도 자원봉사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도 '제2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미리미리 대비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