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주도하는 강성 투쟁노선이 노동현장에서 외면당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조합원들이 강성 노조집행부에 반기를 드는가 하면 노조원의 의견을 수렴, 실리주의로 탈바꿈하는 온건 노조집행부도 생겨나고 있다. 여기엔 가뜩이나 경기가 좋지 않은 때 파업을 하면 회사 자체가 망할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하고 있다. 이런 새 흐름이 투쟁일변도의 노동계 기류를 바꿔놓을 수 있을지 관심거리다. 대표적 사례가 24일 실시된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 찬반투표다. 이날 투표에선 전체 조합원 3만8천9백17명의 90.5%인 3만5천2백34명이 참가, 2만1천3백2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전체 조합원의 54.8%, 투표참가자의 60.5%만이 파업에 찬성한 것이다. 이는 역대 노조 투표 결과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파업 찬성률은 지난해 72.4%, 2001년에는 70.3%에 달했다. 노조 집행부가 내건 비정규직 조직화 등 노동여건 개선과는 동떨어진 요구조건에 대해 조합원들이 전폭적 지지를 보내고 있지 않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금속노조 최대 사업장인 두산중공업 노조도 25일 예고된 민주노총의 총력투쟁 파업에 노조원은 참여하지 않고 확대간부만 동참하기로 했다. 이는 장기 노사분규로 수주부진에 허덕이는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한 노조 집행부의 현실적인 고민을 대변한 것으로 분석된다. 부산과 대구의 지하철 파업도 마찬가지다. 부산 지하철 파업은 노조원들의 대열 이탈로 '집행부만의 파업'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 집행부의 파업돌입 결정에도 불구하고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대체인력 투입 없이 정상운행되고 있는 상태다. 노조원 김모씨(33)는 "민주노총의 협상지침에 볼모로 붙잡혀 협상내내 원점만 지키다 결국 파업을 선언하고 만 집행부에 일부 조합원들이 집단으로 반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지하철 노조도 24일 오후 1시30분께 파업을 풀었다. "대구지하철 사고가 아직 수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웬 파업이냐"는 시민들의 부정적 여론이 노조 집행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서울지하철공사(1∼4호선)와 도시철도공사(5∼8호선) 노조 집행부는 부채도 많은데다 파업 설득력이 없어 아예 파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강성일변도의 노사문화를 배척하고 실리주의를 요청하는 조합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 온건 성향의 합리적 변신을 꾀하고 있다. 노조는 올 임단협 요구 안에서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이 공동요구안으로 내건 주5일 근무제 실시와 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을 제외했다. 전교조의 경우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폐지를 위한 집행부의 강경노선이 내부에서 제동이 걸리고 있는 상태다. 전교조는 이달 들어 '교사 1천명 상경투쟁'을 유보한데 이어 연가투쟁도 평일에서 토요일(21일)로 하루 늦췄다. 연가투쟁에도 전체 조합원 9만여명의 4.7%에 해당하는 5천여명(경찰 추산)만이 참가, 전교조가 목표했던 수도권 지역 조합원의 30%, 지방 조합원의 15%에 크게 못미쳤다. 명분만을 앞세워 강경노선을 택한 집행부에 대한 일부 조합원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김태현ㆍ하인식ㆍ김현석 기자 hyun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