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조건 개선보다는 구조개혁반대 등 정치적 이슈가 부각되고 있는 올 노동계 하투(夏鬪·여름투쟁)에서 국내 노동계 실세중의 하나인 현대중공업 노조가 '실리주의 협상'을 선언하고 나서 주목되고 있다. 이같은 현대중공업 노조의 실리 노선은 특히 노동운동의 메카인 울산에서 그동안 한국 노동운동을 대표해온 강성 대기업노조의 합리적 변신이라는 점에서 온건 노동운동을 지향하고 있는 적지 않은 기업 노조들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최근 시작된 임금협상에서 △임금 12만8천4백33원(기본급대비 9.6%) 인상 △고용안정협약서 체결 △성과급 2백% 고정급화 △의료혜택(외래진료 추가진료) 등 4가지를 회사측에 요구하고 있다. 상급단체인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이 올해 임단협에서 공동요구안으로 내건 주5일근무제 실시와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은 요구조건에서 제외했다. 노조 관계자는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의 올해 공동요구안이 회사 실정과 조합원 정서에 맞지 않아 요구안에서 제외했다"며 "조합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작업환경 개선과 임금 및 복지혜택 등을 중점 연구ㆍ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 민주노총의 7월초 총파업 계획에 대해서도 "공장라인을 중단하고 조합원들이 대거 참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집행부만 동참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지난 19일 열린 제3차 노사 실무협의에서 노조는 "회사가 어렵다면 노조가 적극 나서 돕겠다"면서 외료진료 추가지원 등 노조 요구안에 대해 전향적 자세를 취해줄 것을 회사측에 요구하기도 했다. 또 "상급단체의 공동요구사항을 요구안에 포함시키지 않고 독자적으로 협상에 임하는 만큼 회사도 외부의 눈치를 보지말고 소신껏 제시안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최윤석 노조위원장의 이같은 개혁 드라이브는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합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풀어가야 할 난제 또한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 먼저 하반기 노조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노조를 어용으로 내몰며 선명성 경쟁을 부추기고 나선 현장 일부 조직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동종업체인 대우조선해양 노사가 고율의 임금인상에다 비정규직 근로자 처우개선 문제까지 합의함에 따라 조합원들의 요구 수준 또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최 위원장은 "과거에 얽매여서는 미래의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노조 설립 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낡은 것들을 청산하는 것이 바로 노조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1988년 1백28일 파업, 90년 28일 파업, 94년 63일 파업 등 90년대 중반까지 강성 민주노총의 선두주자로 국내 노사분규를 주도해 왔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