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4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긴 노무현 당선자는 서울시내 모처에서 허흥진 조흥은행 노조위원장과 이용득 금융노조위원장을 비밀리에 만났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파업을 막고 서로 수긍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 보자는 당선자의 의지가 반영된 자리였다. 3명은 이날 "제3자 실사를 한번 더 해 보고 매각 여부를 결정하자'는데 합의하고 웃으며 헤어졌다. 모든 경제행위에는 득과 실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당시 노 당선자와 노조의 만남은 어떤 득실을 낳았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얻은 것은 적고 잃은게 많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얻은 것은 당시 예정돼 있던 '파업'이 5개월 정도 늦춰졌다는 것 정도다. 조흥 노조는 신한금융지주회사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는 등 매각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자 1월말 전면 파업을 계획했었다. 이 계획이 '제3자 실사과정'을 새로 진행키로 함에 따라 연기됐던 것.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우선 매각가격이 5천억원 정도 떨어졌다. 제3자 실사가 진행되는 동안 SK글로벌 사태가 터졌고 카드채 문제가 새로 불거졌다. 신한지주는 조흥은행이 갖고 있는 이들 채권에 대한 사후 손실보장을 추가로 요구하게 됐고, 명백한 부실 앞에서 정부는 이를 반박할 명분이 없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흥은행을 올초 팔았어야 했는데…"라며 탄식하는 이유다. 노 대통령은 또 노조측에 '기대'를 증폭시켰다가 신뢰만 잔뜩 잃고 파업의 빌미까지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노조는 제3자 실사결과를 들어 "독자생존이 충분한 것으로 나왔는데도 매각을 진행한다"며 '약속파기'를 파업의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회동 당사자인 노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고 이제 정부는 "독자생존 여부와 정부 지분 매각은 별개의 문제"라고 딴 소리를 하고 있다. 경제학에 '학습효과'라는게 있다.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음을 얻어나가는 것을 말한다. 경제논리로 풀 문제를 '친노(親勞)'라는 정치논리로 접근한 것이 얼마나 큰 수업료를 요구하고 있는지를 정부는 이제라도 깨달았으면 한다. 박수진 경제부 정책팀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