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는 매우 인상적인 모임에 초대받아 강의를 했다. 40대 중·후반쯤의 연령대로,잘 나가는 재벌그룹의 2세 경영인부터 대기업·금융기관의 CEO,임원,공무원,법조인,기자,교수 등 공통분모가 없어 보이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여타 다른 사교모임과는 달리 결석이나 지각 등에 대한 벌칙이 매우 엄격했으며검소한 도시락으로 저녁을 대신하면서 모임을 진행하는 것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들과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미술에 대해 한 시간동안의 강의와 세시간에 가까운 질문·답변을 마치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비로소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사회 각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애정,그리고 일에 대한 남다른 열정으로 맡은 분야에서 일가를 일궈나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그 모임의 일원이 되어 사회의 한 모퉁이를 떠받치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착각으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미술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그들이 토로하는 어려움은 현대 미술,미술 평론의 난해함이었다. 하긴 수백 권은 족히 될 국내외 미술서적을 섭렵하고 미술에 대한 애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필자도 때로는 난해한 미술 평론에 짜증이 난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어느 유능한 미술평론가는 내 이런 짜증에 대해 "나도 이해 못하는 평론이 많아요"라며 내 편에 섰다. 내용의 난해함이야 내 내공의 깊이를 탓할 일이지만,씹히는 것도 없는 문맥의 난해함은 극복할 방법도 의미도 없다.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낀 것처럼 시야가 어지러워지고 눈이 고단해질 뿐이다. 피카소는 "사람들은 새소리는 따지지 않고 좋아하면서 왜 내 그림에 대해서는 그렇게 많이 묻는가?"라고 했다. 프랭크 스텔라도 "사람들은 내 그림에서 어떤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려고 애쓰지만 내 그림은 그 자체가 의미일 뿐이다. 당신이 보는 것이 전부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감성이지 의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