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영은 삼성이 1990년대 말 국가적 경제위기를 비교적 쉽게 넘기고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서게 된 밑바탕이었다. 경제위기란 단어조차 생각하기 어려웠던 지난 93년 그룹내에 위기감을 조성하면서 불을 댕긴 신경영 덕분에 삼성은 막상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타이밍도 좋았지만 신경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당시 국내 수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점.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 기업의 경쟁양식은 양(量)이요 시장점유율이었다. 그러나 신경영은 '질'과 수익률 중시 경영을 내세웠다. 꼭 5년 뒤 외환위기는 우리 기업에 바로 질과 수익률 경영을 주문하게 된다. 두번째로는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한 그룹내 역할 분담이다. 아젠다 제시와 기획, 실행의 삼각역할 분담구도가 그것이다. 화두가 되는 아젠다는 이건희 회장이 제시하고 그룹 차원의 목표와 방향은 구조조정본부(이전에는 회장 비서실)가 짜며 각 계열사가 경쟁적으로 현장에서 실천하는 분업구조가 실행의 효율을 높였다는 분석이다. 그룹내 싱크탱크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신경영의 이론적 바탕과 시대적 의미를 이론으로 다듬어 알리는 사이 삼성인력개발원은 이를 교육프로그램으로 만들어 전 임직원들에게 골고루 전파했다. 이 회장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구체적 목표를 갖춘 전략으로 승화됐다. 신경영의 중요 어록들을 삼성 사람이라면 외울 정도로 된 것은 촘촘하게 짜여진 교육프로그램 덕분이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신경영의 각종 화두들, 특히 이 회장이 언급한 내용들이 쉬운 예화로 확대 재생산됐다는 점이다. 위기에 대응하는 '메기론'과 '개구리론' 등 동물의 세계에 빗댄 예화에서부터 빠른 속도로 상승하지 못하면 추락하고 만다는 '보잉제트기론'까지 이 회장의 이야기가 알아듣기 쉽고 전해 주기 쉬운 경영방침이 돼 사원 개개인들의 실행력을 높인 것이다. 회장이 비전을 제시하고 싱크탱크와 구조조정본부가 그 살을 만들며 각 계열사 사장이 각 사에서 할 일을 앞다퉈 기획하고 전사원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실천해 가는 과정에서 삼성의 비전-전략-실행은 정렬(alignment)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신경영은 삼성의 새 기업문화로 뿌리내릴 수 있었다. 권영설 경영전문기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