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중국이 본 '등신외교'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상하이의 유력 일간지 천바오(晨報)가 11일 노무현 대통령의 일본방문을 놓고 빚어졌던 '등신외교'논란을 보도했다.
기사 머리에 '白痴外交風波(백치외교풍파)'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우리말 '등신'을 '바이츠(白痴)'로 옮긴 게 눈에 거슬린다.
중국어 바이츠(白痴)는 '지력저하 동작둔화 언어장애 등에 시달려 일상생활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는 질병 또는 그 환자'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 말.이 기사를 본 중국인들이 다음달 중국을 방문할 노 대통령에 대해 바이츠라는 선입견을 갖지나 않을 지 걱정된다.
상하이 사회과학원의 한 연구원과 기사를 놓고 대화를 나눴다.
한반도 정세,대북송금 특검 등으로 화제가 이어졌다.
그는 대뜸 지난 80년대 초 중국 정계 얘기를 꺼냈다.
개혁 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은 당시 문화대혁명을 일으켜 중국을 혼란에 빠뜨렸던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한 평가 작업에 들어갔다.
결론은 '문혁의 오류를 범했지만 공적이 더 많은 위대한 지도자'라는 것.문혁세력의 탄압에 시달렸던 덩샤오핑이 마오의 부정적 측면을 감싸안은 것이다.
덕택에 마오는 지금도 전 인민의 사랑을 받는 정신적 지도자로 남아있다.
한국사정에 정통한 그는 "새 정권이 들어서면 전 정권 관계자들이 정치적 고려로 줄줄이 감옥에 가는 한국과는 다른 형태"라며 "중국이 과거긍정의 정치를 한다면,한국은 과거부정의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북송금 특검 역시 같은 맥락으로 보고 있다.
외교에는 항상 비밀흥정과 협상이 있게 마련인데 정권이 바뀐 후 정치적 이유로 공개되는 것은 난센스라는 얘기다.
등신외교 발언 역시 상대방의 약점을 들춰 공격하는 '과거부정 정치'의 연장선이라는 게 그의 시각이다.
일당독재 체제인 중국정치를 우리나라와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바이츠라는 단어를 보면서 우리 정치도 좀더 과거를 감싸고 서로 포용하는 모습을 보일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바이츠병에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상하이=한우덕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