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출범 1백일을 앞두고 국내 경제가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생산ㆍ소비ㆍ투자 등 주요 거시경제지표의 여전한 부진도 문제지만, 기업 금융 노동 등 분야의 정부 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있다는 점이 경제불안의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미국 등 선진국 경기가 일부 회복조짐을 보이고는 있지만 한국이 '회복 대세'에 동승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여전한 세계 경제의 '엔진'인 미국과 한국보다 한발 앞서 '개혁 몸살'을 경험한 독일과 영국 브라질, 저임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태국 등 5개국에 나가 있는 한국 정부의 상무관들로부터 주재국의 경제 현황과 우리가 참고할 만한 현지 정부의 개혁 프로그램 등을 들어봤다. 안현실 논설위원 겸 전문위원의 사회로 2일 한국경제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상무관들은 "주요국들은 거세어지고 있는 세계 경제대전(大戰)의 파고를 헤쳐나가기 위해 기업의 의욕을 북돋워 주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 참석자 ] 남창현 < 독일 상무관 > 노문옥 < 태국 상무관 > 우태희 < 미국(뉴욕) 상무관 > 유종순 < 브라질 상무관 > 정승일 < 영국 상무관 > ( 가나다 순 ) 사회 : 안현실 < 한경 논설ㆍ전문위원 > ----------------------------------------------------------------- - 독일 경제가 일본 못지 않게 깊은 불황에 허덕이자 집권 사회민주당 정부가 친(親)노조 좌파 노선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과감한 노동 및 복지정책 개혁을 추진키로 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남창현 주독일 상무관 =독일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0%로 제자리걸음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경제의 엔진으로 불렸던 독일이 이처럼 무력해진 것은 사민당 정부의 과도한 노조편향적 정책 때문이라는 비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는 최근 공공투자 확대, 감세추진, 실업수당 지급 기간 축소, 임금보조금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경제 개혁안을 내놨습니다. - 노동부문과 복지정책을 어떻게 선회하기로 했는지 좀더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해 주시지요. 남 상무관 =파트타임 및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임금보조를 과감하게 줄이기로 했습니다. 이와 함께 재정적자의 주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사회보장제도를 대대적으로 축소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 영국도 한때 과도한 노동자 보호와 과잉 복지정책으로 인해 '영국병'에 빠졌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침체돼 있었지만 적극적인 자유시장경제의 도입으로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최근에는 기업환경의 대대적인 정비를 통해 해외 유수 기업들을 대거 유치하는데 성공해 각국 정부로부터 외국인투자 유치의 대표적인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히고 있지요. 정승일 주영국 상무관 =영국은 외국인투자 유치가 고용창출과 낙후지역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아래 해외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자국 인력을 고용하는 것과 비례해 정부차원의 현금 보조도 제공하고 있지요. 물론 자국 기업에 대해서도 신규 인력을 채용하면 투자금액의 10~20%를 현금으로 보조해 줍니다. 기업의 내ㆍ외 국적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지원해 주니까 한국처럼 국내외 기업간 역차별 논란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투자 환경은 어떻습니까? 정 상무관 =외국 기업들은 단지 현금보조만을 계산하고 영국에 투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국은 교통 통신 물류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생산비용이 유럽내 최저수준입니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제대로 갖춰져 있다는 얘기지요. 92년 이후 노사분규 건수도 유럽연합(EU) 평균을 밑돌고 있습니다. 전력ㆍ가스산업이 민영화돼 있어 전기 가스 요금이 저렴하다는 것도 외국기업이 영국을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한 번 유치한 외국기업에 대한 사후관리도 철저합니다. 유치기업별 전담반이 생산ㆍ영업활동을 하는데 불편한 점이 있는지를 수시로 체크하고 관계 부처가 모여 해결 방안을 내놓습니다. - 브라질에서는 룰라 대통령이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습니다. 좌파 성향인 룰라 대통령이 당초 예상과는 달리 시장친화적인 정책을 추진해 브라질 경제 재건에 앞장서면서 월가 투자자 등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 유종순 주브라질 상무관 =룰라 대통령은 당선 전에 연 5% 성장, 일자리 1천만개 창출 등 성장 위주의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선 초긴축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취임 일성(一聲)으로 "브라질은 변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인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연방예산을 36% 삭감하고 환율시장 안정을 위해 두 차례 금리를 인상했습니다. 경제팀은 시장 친화적 인물로 채워나갔죠. 한국의 재정경제부 장관에 해당하는 자리엔 온건 성향의 전문가를 앉히고, 중앙은행 총재에 미국 보스턴 은행장 출신을 임명했습니다. 그 결과 브라질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가 올라갔고,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S&P는 브라질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영국경제지인 파이낸셜 타임즈는 "브라질 경제팀이 축구대표팀 만큼이나 훌륭하다"며 극찬했습니다. - 태국도 최근들어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정부가 발벗고 나서고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노문옥 주태국 상무관 =태국은 최근 사스로 인해 경제가 주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년 수출이 5.7% 늘어났고 저금리 정책으로 건설투자도 증가하는 등 경제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부 관료부터 기업마인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2001년 집권한 탁신 수상은 AIS라는 태국 최대 통신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출신입니다. 주요 장관들도 민간회사 출신이 많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들은 정보기술(IT) 자동차 패션 등을 전략 산업으로 지정해 적극 육성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의 외국투지 유치에도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 있는 대사를 'CEO 앰버서더'로 지정해 일정량의 투자목표를 정해주고 이를 달성하도록 유도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 미국도 부시 행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팔을 걷어붙이면서 회복조짐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보는 미국 경제의 요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우태희 주미 상무관 =미국 경제가 최근들어 눈에 띄게 상승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그동안 부진했던 제조업에도 회복 신호가 켜지고 있습니다. 미국 제조업 중심지인 시카고의 구매자관리자협회는 최근 제조업 동향을 나타내는 시카고 구매관리지수가 5월중 경기확장 기준치에 해당하는 50을 넘어 52.2를 기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라크 전쟁 이후 살아나기 시작한 소비와 함께 제조업까지 활력을 되찾고 있다는 얘깁니다. - 노무현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대해 두 나라 정부가 모두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그곳 경제계의 반응도 궁금합니다. 우 상무관 =월가의 경제 전문가들도 "대단히 성공적이었다"고 말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뉴욕증권거래소를 방문하고, 한국 경제정책을 설명하는 간담회를 개최한게 미국 투자자를 안심시키는데 주효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 하지만 국내 경제는 아직도 부진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내수 부진을 수출이 떠받치면서 그나마 버텨왔는데, 5월 수출이 11개월만에 한자릿수 증가로 내려 앉는 등 수출에도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우 상무관 =한국의 대미국 수출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걱정이 큽니다. 반도체 컴퓨터 등의 수요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리아 브랜드'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인식이 크게 개선되고 있어 장기적인 수출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등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값싼 '세컨드 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모습입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도 고가품 판매가 늘어나면서 '제2의 소니'라는 평가를 받는 등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 상무관 =영국내에서도 한국의 자동차 가전제품 컴퓨터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 기아자동차 등의 공격적인 마케팅 덕분에 인지도가 크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 해외에 진출해 있는 국내기업들이 성공적인 과실을 맺기 위해서는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노 상무관 =동남아에 둥지를 틀려는 국내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들은 생각보다 기업 관련 규제가 심한 편입니다. 이같은 규제를 피해 편법으로 동남아에 진출하려는 국내 업체가 늘고 있습니다. 현지 변호사 등 공식적인 채널을 이용하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편법으로 사업을 하다가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돈이 많이 들더라도 안전한 투자를 위해 현지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고 진출해야 합니다. 정리=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