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w.lee@geahk.ge.com 얼마 전 한국을 아주 잘 아는 미국인을 만났다.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많은 좋은 점을 얘기한 뒤 뼈아픈 한마디를 툭 던졌다. "한국사람은 너무 전투적이에요"라는 것이었다. 그리곤 사람을 채용하거나 흥정할 때를 예로 들었다. 상대방의 역량이나 기대치가 100이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시작'을 위해 120을 제시하면 미국사람은 고마워하며 선뜻 손을 내미는데 한국사람은 거꾸로 150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합의를 한다고 해도 마음 속에 상대에 대해 불신을 안고 출발하게 된다는 얘기였다. 최근 들어 여기저기 비치는 한국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투적이다. 반미의 붉은 물결,물류대란의 끔찍한 구호,전교조와 비전교조의 투쟁,대통령을 돌려세운 광주민주화 기념식 현장,계층간의 불협화음들…. GE엔 공장별로 노조가 설립돼 있지만 근래의 작은 움직임만 빼면 지난 30년간 파업이 발생하지 않았다. 성숙된 자존심과 양보의 미덕을 바탕으로 존중하고 신뢰하며 서로간에 상대방을 위한 작은 여백을 남겨두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결과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투쟁적이 됐을까? 어쩌면 한국인의 열정과 에너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붉은 물결 속에 넘치던 너그러운 모습,길거리 응원 후 자발적으로 청소하던 장엄하고 감동적인 순간을 돌아볼 때 열정과 에너지가 투쟁의 요소라곤 믿을 수 없다. 그렇다면 무엇때문인가?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자라난 불신과 초조함,법과 원칙을 지키면 손해본다는 생각,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는다는 외로움과 두려움으로 인해 다른 사람의 입장을 감안할 수 있는 마음의 여백을 잃어버린 까닭은 아닌가. 하인 둘이 다투다 서로 상대의 잘못을 고하자 두 사람에게 각기 "네 말이 옳다"고 하고 이 광경을 본 부인이 "둘 다 맞다고 하면 도대체 어느 쪽이 틀렸다"는 것이냐고 묻자 "부인말도 맞구려"했다는 황희정승의 일화는 모순같지만 이해당사자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여유의 표시라 할 수 있다. 어렵고 힘든 시기일수록 마음의 여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경우든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지녀보자.서로가 상대에 대한 인간적 믿음과 존경을 잃지 않을 때 우리 주변엔 밝은 웃음이 넘칠 수 있을 것이다. 손해보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도 나부터 먼저 실천하는 게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