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문연구요원제 존속을..洪性秀 <서울대교수·전기컴퓨터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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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전문연구요원'이라는 병역의 대체복무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석사학위를 가진 이공계 연구원들이 일정한 자격 검증을 거쳐 병무청이 지정한 기업 연구소나 대학에서 5년간 대체 병역근무를 하는 것이다.
이는 과학기술인재들이 병역에 의한 중단 없이 연구에 전념하여 국가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로 20년 이상 시행되어 왔다.
처음 이 제도가 시행될 때는 60년대의 베이비 붐으로 초래되었던 병력자원의 과잉공급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산업발전에 기여할 인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병력자원이 감소하고 병역의 형평성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병역정책 관계자들은 종종 이 제도의 축소·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최근 한국국방연구원이 개최했던 공청회에서도 전문연구요원제를 포함한 대체복무제도의 축소와 폐지가 주장된 바 있다.
이 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병역의 형평성,복무와 선정 과정에서 병역비리 개연성,병력자원의 부족 등 간단치 않은 이유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주장들은 일견 타당성을 가지고 있지만,전문연구요원제도가 폐지됐을 때 나타날 손실을 간과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먼저 전문연구요원제도만을 놓고 볼 때,이 제도가 병력자원 부족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2003년 전문연구요원으로 편입된 연구원의 수는 2천5백명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국가산업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여하는 바는 지대하다.
구체적인 예로,작년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에서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16개의 정부지원정책 중 전문연구요원제도가 '연구 및 인력개발비 세액공제' 다음으로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90년대 말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IT분야에서 이룩한 성과의 뒤에는 기업 연구소에서 묵묵히 근무한 전문연구요원들의 공헌이 있었다는 점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들 외에도 석사학위 취득 후 경쟁적인 시험을 통해 엄정히 선발되어 박사과정에 편입되는 전문연구요원들이 있다.
이들은 국내대학원이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다.
구체적으로,국제수준의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수로 평가해 볼 때 서울대학교 대학원의 경우 작년 세계 30위권에 진입했다.
국제수준의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기 위해서는 동일분야의 세계적인 명문대학교와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서울대학교가 많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전문연구요원제도가 없다면 대학의 연구원들은 2년 이상의 연구 중단을 겪게 될 것이며,이는 곧바로 치명적인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학문은 흐르는 물 위를 달리는 배와 같아서 멈춰 있는 것은 곧바로 후퇴를 의미한다는 중국의 금언(學問如 流水行舟 不進則退)이 21세기에도 과학기술계의 절실한 현실인 것이다.
복무의 형평성과 병역 비리의 개연성을 우려하여 전문연구요원제도를 축소,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작용을 우려해 국가과학기술 육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정책의 하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보다는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운영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것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연구요원제도를 단순한 대체복무로 보지 않고 국가인력자원의 효율적 재배치로 인식하는 성숙한 국민적 인식이 요구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전문연구요원들이 철저한 국가적 사명감을 갖도록 교육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며,합리적이며 철저한 복무관리가 요청된다.
이런 체제가 부족해 전문연구요원제도의 문제가 지적된다면 제도 자체에 대한 축소나 폐지가 아니라 적극적 개선의 여지가 없는지를 반문해야 하는 것이 병무정책 당국의 임무일 것이다.
인재 의존성이 심화되고 있는 국제적 기술경쟁을 생각할 때 핵심과학기술인재들에게 연구의 연속성을 보장해 주는 정책이 바로 국가적 연구개발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sshong@redwood.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