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삼겹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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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나빠지면 시장엔 우선 두 가지 현상이 생긴다고 한다.
양복이 안 팔리고 갈비집 손님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제 IMF 이후 갈비집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대신 소갈비의 3분의1 값에 먹을 수 있는 삼겹살집이 늘어났다.
주머니 사정에 광우병 파동이 겹쳐서인지,먹어보니 괜찮아서인지 몇년 사이 삼겹살의 이미지는 확 바뀌었다.
남자들끼리 드럼통에 양철판을 얹어 만든 테이블에 둘러앉아 먹던 술안주에서 가족들의 주요 외식메뉴로 탈바꿈했다고나 할까.
수요층이 확산되면서 삼겹살집의 이름과 외관이 다양해진 건 물론 삼겹살의 조리법과 소스 심지어 두께까지 변했다.
흑돼지ㆍ통돼지ㆍ똥돼지에서 와인삼겹살 녹차삼겹살 대나무통삼겹살 항아리삼겹살 키토산삼겹살 매실삼겹살 등 온갖 이름이 등장했고,가게 또한 낡고 허름한 집 일색에서 벗어나 깔끔하고 산뜻한 레스토랑이나 카페 형태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굽는 판도 한쪽에 구멍낸 평평한 철판에서 기름이 잘 흘러내리도록 솥뚜껑 모양으로 바뀌더니 요즘엔 층층솥뚜껑과 돌판이 인기다.
냉동육이 아닌 냉장육을 취급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종래의 3㎜가 아닌 6㎜ 두께로 잘라주거나 1인분을 덩어리째 내주기도 한다.
너무 얇게 굽는 것보다 두꺼운 쪽이 더 맛있다는 조사결과에 따른 변화다.
소스도 기름소금 외에 후추소금이나 부추간장 겨자간장 등이 두루 사용된다.
1인분에 6천∼7천원이고 갈비뼈쪽에 붙어있다는 오겹살과 어깨부위라는 항정살은 좀더 비싸지만 그래도 소 등심이나 갈비보다는 훨씬 싸다.
5월 들어 할인점의 삼겹살 매출이 부쩍 늘었다고 하는 가운데 삼겹살집 또한 붐빈다는 소식이다.
불황으로 기업의 회식비가 줄어든데다 공무원 한끼 식사비가 3만원으로 제한되면서 저녁엔 1인분에 최소 4만원이상인 일식집과 한정식집 손님은 줄고 삼겹살집을 찾는 발길만 잦아진다는 것이다.
회식이나 모임의 경우 사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이면 괜찮다.
'오리고기는 찾아 먹고 돼지고기는 있으면 먹고 소고기는 되도록 덜먹는 게 좋다'는 속설도 있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