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혁명열사 용사 백의전사….요즘 중국 언론에 자주 나오는 단어다. 사스와의 전쟁에 참여한 의료진을 일컫는 말이다. 사스 환자를 돌보다 숨진 광둥성의 예신 간호사와 중산의대병원 의사인 덩롄시엔.정부에 의해 '혁명열사'로 추앙된 이들은 또 다른 의료진 2명과 함께 '전국 우수공산당원'이라는 칭호도 받았다. 6천5백만 공산당원의 학습 대상이 된 것이다. 베이징시가 노동절을 기념해 훈장을 수여한 17명의 의료진 가운데 장수춘이라는 퇴직 군의관의 이야기는 중국인 사이에 화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74세의 고령에도 불구,진료에 나섰다가 사스에 걸린 그는 회복 환자의 혈청 주입이 위험한 치료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몸에 시험토록 하는 희생정신을 보였다는 것이다. 뒤늦게 건강을 되찾은 그의 이야기가 연일 중국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 공산주의청년단도 5·4운동을 기리기 위해 수여하는 '5·4훈장' 수상자에 2명의 의료진을 포함시켰다. TV에서는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의 화면과 함께 비장한 음악이 흘러나오고,신문에서는 의료진에게 바치는 시까지 등장했다. 부모 얼굴을 한 달 동안 못본 10대 소녀의 '개선 의사가 되어 귀가하기를 기다린다'는 의젓한 내용의 편지도 실렸다. 의료진 영웅시대라 할 만하다. 영웅 만들기는 사실 중국 공산당의 오랜 통치방식이다. 공산당은 각종 분야별 영웅을 내세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왔다. 남을 위해 자신을 버린 군인 레이펑에서부터 봉사정신이 투철했던 공무원 쿵판선과 품질불량 제로의 자동차정비공 왕타오 등이 그들이다. 이번에는 특정인보다는 의료집단을 영웅시하고 있다는 게 다르다. 중국지도부는 의료진 영웅 만들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걸까. '죽음을 불사하는 영웅이 우리를 사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 것이다. 사스 공포에 흔들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건 아닐까. 물론 의료진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목적도 있다. 중국의 사스 감염자는 8일 현재 4천6백98명으로,이중 의료진이 20%를 차지하고 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kjoh@hankyung.com